지난주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세종연구소가 도쿄에서 개최한 한·일 언론인 포럼 행사에 참가하면서 다양한 일본인 전문가와 언론인을 만날 수 있었다. 만남에서 들어본 그들의 생각은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거나, 한국의 정서와는 많이 달랐다.
한 진보 진영의 언론인은 한국은 왜 아키히토(明仁) 일왕을 ‘천황’으로 부르지 않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각국에서 고유하게 부르는 이름을 불러주는 게 예의가 아니냐는 얘기였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는 다른 언론인도 소녀상을 철거하지 않는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소녀상 존재 자체를 거부한다기보다는 ‘왜 하필 일본대사관 앞이냐’는 불만이었다. 일본인으로서 주한 일본대사관에 갈 때마다 매우 불쾌하다고 토로했다. 다만 대다수 전문가와 언론인은 소녀상을 굳이 빠른 시일 내 철거하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한국 내 반대 여론을 감안해 시간을 두고 철거하길 바라는 눈치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위안부 할머니에게 사과 편지를 보내는 것에 대해선 반대 입장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한 우파 언론인은 이미 지난해 12월 한·일 양국 정부 간 체결된 위안부 합의안에서 사과를 했는데, 사과 편지를 다시 요구하는 것은 ‘골포스트’를 옮기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언론인은 일본 정부는 지난해부터 한·일 관계 개선보다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더 방점을 두고 정책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중국과 먼저 좋아지면 한국은 결국 알아서 따라올 것이란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한·일 관계는 뒷전으로 밀려있다고 했다. 현재 일본 외교의 우선순위는 북핵 대응방안, 미·일동맹 강화, 러시아와의 북방섬 반환 협상, 또 연말 도쿄에서 열릴 한·중·일 정상회담 때 중국의 참석을 이끌어내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와 관련해 일본을 거들지 않는 데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있었다.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기에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하면서 왜 일본이 실효지배 중인 센카쿠 열도를 넘보는 중국을 비판하지 않느냐는 논리였다. 독도 문제와 관련해선 일본 내 누굴 만나더라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2년 8월에 독도에 상륙한 일에 대한 앙금이 여전히 ‘아주 많이’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에 대한 호의적 시각이 적지 않았다. 방위성의 고위 관료는 “지난 리우올림픽 때 한국 유도 선수가 출전해 일본이 아닌 나라와 경기를 할 땐 일본인 다수는 한국을 응원했다”고 소개했다. 또 3국 정상회담 때 박근혜 대통령의 첫 일본 방문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일부에선 3국 정상회담 뒤 박 대통령이 일본을 재방문하거나 아베 총리의 방한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또 한·일 관계에 있어 경제 협력 분야에선 위안부 문제 등 정치적 사안은 분리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또 이웃나라끼리 불필요하게 작은 것을 쟁점화해 갈등을 야기하는 것도 자제하자는 발언도 있었다.
인상적인 점 한 가지는 다케이 도모히사 일본 해상자위대 막료장(해군참모총장)이 한국 취재진과 만나 대화한 뒤 취재진이 사무실을 나설 때 뜻밖에도 아리랑 노래를 틀어준 점이다. 그런 작은 호의와 정성이 쌓이다 보면 결국 양국 간에 교류와 협력도 커지리라 생각했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를 경계하되, 경제대국인 일본과 교류를 넓히는 쪽으로 대일외교를 해야 할 것이란 판단이 들었다.
손병호 국제부 차장 bhson@kmib.co.kr
[뉴스룸에서-손병호] 일본인들의 ‘한국 생각’
입력 2016-10-02 1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