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엄마가 끓여놓은 된장찌개와 고등어구이가 차려진 저녁 밥상 앞에서 사남매가 모여 즐겁게 보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지금처럼 예능프로그램이 다양하지 않았던 1980년대. 음악 쇼 프로그램 사이, 독보적 예능프로그램이던 ‘가족 오락관’이 그것이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연애할 쯤에도 했던 걸 보면 꽤 오래 했던 장수 프로그램이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귀를 막고 뒤돌아 있던 상대방을 돌려세워 입 모양으로만 단어를 전달하면 최종 사람이 그 단어를 맞히는 게임. 잘 웃는 아주머니들로 구성된 방청객과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우리는 그 단어가 뭔지 안다. 하지만 전달하는 과정에서 왜곡된 단어를 보며 사람들은 박장대소한다.
그 고전적인 오락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안방에서 사라진 이유는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문화생활이 다양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런 ‘전달의 오류’가 더 이상 오락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같은 ‘사실’에 대해서 각자가 처해진 상황에 따라 자신의 안위와 그전까지 습득된 정보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전달받는다는 것이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의 비극이 아닐까? 같은 일을 두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동시대에 살면서 전혀 다른 사회를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들. 나는 정치적 견해가 극과 극으로 다른,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는데 그들을 만나고 오면 마음속으로부터 현기증이 일어난다.
시위 현장에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 선생이 숨을 거둔 지 일주일이 지나고 있다. 돌아가신 분의 영면을 바라며 옳게 장례절차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분의 사인을 두고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취하고 싶은 이야기만 전달하며, 그것을 또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옛날, ‘가족 오락관’을 보며 웃을 수 있었던 1980년대가 그리워질 정도다.
글=유형진 (시인), 삽화=전진이 기자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오락이 없어진 ‘가족 오락관’
입력 2016-10-02 17:34 수정 2016-10-02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