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상황 나쁘지 않을 때 경쟁력 강화 ‘선제적 메스’
입력 2016-10-01 00:00
“우는 아이 젖 물려주는 게 아니라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려주는 겁니다.”
정부 관계자는 30일 제5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한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해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설비 투자에 많은 돈을 들이고도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수익성이 떨어진 기업들이 사업을 접을 수 있도록 정부가 구조조정의 메스를 대신 들이댔다는 것이다.
철강협회와 석유화학협회는 정부 발표에 앞서 각각 보스톤컨설팅그룹(BCG)과 베인앤컴퍼니 등 글로벌 컨설팅 업체를 선정해 업종별 경쟁력을 진단했다.
석유화학·철강 중국 덕에 웃었지만
한국은 세계 6위 철강 산업국이다. 하지만 공급 과잉과 글로벌 경기 침체로 시장 전망은 좋지 않다.
BCG는 글로벌 철강수요를 두고 2030년까지 연 1%대의 저성장이 예상된다고 봤다. “중국이 생산능력을 축소해도 2020년에는 7억∼12억t의 조강 생산능력 과잉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전 세계에 남아도는 철강은 우리나라 전체 조강 생산능력인 약 8600만t의 9배 수준인 7억5000만t이다. 철강이 남아돌면서 각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범용 수입 철강에 대해 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호무역에 나섰다.
주요 수요처인 자동차, 건설, 조선업 부진에 중국의 저가 철강이 쏟아진 게 원인이었다.
특히 판재류의 경우 무역장벽이 높아지면서 수출에 차질을 빚고 있고 후판·강관도 조선업 부진 등으로 공급과잉 상황이다. 포스코가 4곳, 현대제철이 2곳, 동국제강이 1곳의 후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석유화학도 다를 바 없다. 베인앤컴퍼니는 한국의 11개 석유화학 기업이 공급과잉 품목을 생산하고 있어 사업재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33개 주요 품목 중 테레프탈산, 폴리스티렌, 합성고무, 폴리염화비닐 등 4개 품목이 공급과잉 품목으로 꼽혔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철강기업과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케미칼 등 석유화학 기업이 구조조정 진행을 고려할 만한 대상이라는 게 컨설팅 업체들의 설명이다.
문제는 기업들의 구조조정 의지다. 당장 시장 상황이 나쁘지 않아 급할 게 없다는 것이다. 중국발(發) 구조조정 덕에 공급과잉이 해소됐고 제품 가격이 오르면서 2분기 회복세를 보였다.
LG화학은 2분기 매출이 5조2166억원, 영업이익 6158억원을 기록했고 포스코도 매출 12조8574억원, 영업이익 6785억원을 올렸다. 다른 기업들도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급변하는 만큼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을 결정하면서 유가가 오를 경우 석유화학 산업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남장근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이 공급에 들어갈 수도 있고 유가도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좋은 실적이 계속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실 반영하지 못한 대책
정부는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을 통해 철강과 석유화학 기업들의 인수·합병(M&A)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또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연구·개발(R&D) 지원을 통한 핵심기술을 확보하고 대규모 클러스터도 조성한다.
산업부는 29일 사전 브리핑에서 “최근 추세가 초경량화, 특수 재질을 통한 고부가화”라며 “M&A를 통해 업체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규 투자도 확대하자는 것이 구조조정의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1호 원샷법 신청기업인 한화케미칼에 이어 철강과 석유화학 기업들이 원샷법을 신청했거나 신청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업계에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대책이라는 불만을 내놓고 있다. 특히 업계 특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컨설팅 업체인 BCG가 후판과 강관 공급을 줄여야 한다고 했지만 후판의 경우 선주문, 후생산 방식이기 때문에 공급과잉이 있을 수 없다. 또 동국제강은 정부의 지시 없이 이미 자체적으로 생산량을 줄인 상태다.
공급량을 줄였다가 중국에 글로벌 시장 지위를 뺏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투자 여력이 있는 대기업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도록 정부가 밀어주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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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