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가르치다 보면 피아노 연주라는 프리즘을 통해, 삶을 풀어가는 방법을 들여다보게 된다. 사실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음악레슨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강의가 아닌, 학생의 연주를 듣고 그 상태에 대해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해 학생과 교감하는 섬세한 일이다.
A는 참 성실한 학생이었다. 피아노를 칠 때 정성을 다했고, 연습을 많이 해 오던 학생이다. 그런데 이번 4학년 마지막 학기인 A는 예전 같지가 않았다. 집중을 잘 못하면서, 한 시간의 레슨을 대충 넘기려는 모습이 많았다.
“무슨 일이 있었니?” “죄송해요 선생님. 연습시간이 없어서요, 요즈음 꼬맹이들 아르바이트 레슨을 마치고 집에 오면 피곤해서 연습을 잘 안하게 되고, 주말엔 또 교회 다녀오고 어쩌다 보면 그냥 시간이 지나요. 죄송해요.”
A는 사회인으로서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삶의 균형을 배우는 중인 것 같았다. 내게 죄송하다고 할 필요가 없는 일임에도, 선생인 나는 연습의 부족에 대해 화낼 권리가, 학생은 그에 대한 죄책감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흠칫 깨닫고 내 머릿속엔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피아노 레슨이 목적인 이 수업에서 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걸까. 다시 찬찬히 악보와 연주에 집중하도록 같이 해 보면서 한 마디씩 그녀의 주의를 환기시킬까. 내 기대 수준이 높음을 인지시켜, 연습에 집중하도록 할까. 아마도 저녁 식사를 하고는 풀어져서 다시 피아노 앞에 앉기가 쉽지 않을 텐데, 평생의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엄한 태도로 강력한 숙제를 내줄까. 간혹 영화에서나 내 선생님 중의 한분이 그러 하셨듯, 책을 집어 던지고 용납할 수 없다고 차갑게 말할까. 영화에서처럼 자극을 받아 열심히 연습해서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결말을 기대하고 내가 악역을 자처해 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 대신, 마음속의 목소리가 내게 그저 조용히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다. 나는 A와 음악을 연주하듯 인생 혹은 매일의 생활이라는 작품을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피아노 연주에서 만일 하나의 성부(聲部)에만 집중해서 다른 부분을 고려하지 못한다면 전체 연주는 완성되지 못하는 것과 여러 개의 성부를 함께 잘 진행해야 하는 것, 삶에서는 경제활동, 가정생활, 건강, 의지와 훈련 그리고 선한 의도와 각오 등이 모두 다 잘 연주되어야만 좋은 삶의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다른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피아노만 연습하라고 한다면, 학생은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스스로 많은 시간을 자책하면서 지낼 것이다. 삶의 연주를 배워 나가는데 그 누구에게도 죄송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는 모든 것에 때가 있다는 전도서의 말씀을 좋아한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그리고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심을 때와 뽑힐 때가 있다. 모두 하나님이 주신 다양한 배움의 시간들이다. 나는 피아노 연주에서 성부와 리듬과 멜로디의 균형을 가르치는 선생이지만 내게 불필요한 죄책감을 느끼는 학생들에게 음악만이 아닌 총체적인 삶이 배움이라고, 가장 중요한 수업이라고 상기해 주려고 한다.
임미정<한세대 피아노학과 교수>
[임미정의 삶의 안단테] 피아노와 삶의 연주
입력 2016-09-30 2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