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면 나온다”式 설익은 수사… 예견된 결과

입력 2016-09-29 18:37 수정 2016-09-29 21:41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9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떠나고 있다. 뉴시스

검찰이 수개월간 매달린 대기업 수사에서 핵심 피의자 구속에 실패하고 사건을 종결하는 상황이 잦아지고 있다. 검찰은 “구속 여부가 수사 성패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막강한 수사권을 동원해 전면전을 벌이고도 막바지에 ‘몸통’을 단죄하지 못하는 것은 설익은 채로 수사를 시작해 무리하게 밀어붙인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특수부 검사 경력이 많은 한 변호사는 29일 “수사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뛰어들면 성공할 수 없다”며 “롯데그룹 수사도 전체 계열사를 훑는 식의 전면 수사라면 사전에 확실하고 정밀하게 내사를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지난 6월 사상 최대 규모의 압수수색을 신호로 ‘롯데 상륙작전’에 돌입했다. 집권 4년차를 맞은 현 정부가 ‘제2의 사정’을 통해 레임덕을 방지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홍만표·진경준 전 검사장의 비리 의혹으로 궁지에 몰려 국면전환이 필요했던 검찰 상황이 감안됐다는 해석도 제기됐다.

그러나 수사 초반 신동빈(61) 회장 등 총수 가족의 ‘비자금 꼬리’를 쫓다가 벽에 부딪히면서부터 행보가 꼬이기 시작했다. 신 회장의 구속영장 청구 문제를 놓고 검찰과 청와대 간 입장차를 보였으며, 수사 중요 단계에서 지휘라인이 검찰 뜻을 관철시키지 못하는 데 대해 수사팀 내부의 불만이 있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과 정부가 ‘털면 나온다’는 식의 접근을 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지난해 8개월 동안 포스코 경영 비리를 수사했지만 정준양(68) 전 회장과 정동화(65) 전 부회장, 이상득(81) 전 의원 등 ‘포스코 사유화’의 정점으로 꼽힌 이들을 모두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했었다. KT&G 비리 의혹 역시 10개월 가까이 수사를 벌였지만 주범 격으로 꼽혔던 민영진(58) 전 KT&G 사장은 지난 6월 1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을 첫 표적으로 시작됐던 자원외교 비리 수사도 결과물이 신통치 않았다. 캐나다 정유업체를 부당 인수해 나랏돈 5500억원 손실을 입힌 혐의를 받은 강영원(65)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1심과 2심에서 잇따라 무죄를 받았다. 이들 수사는 모두 이명박정부 시절 유력 인사들과의 관련 의혹이 제기됐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변호사는 “지난 1∼2년간 연착륙에 실패한 수사들은 하명수사 성격이 짙거나 정치적 셈법이 들어간 사례가 대부분”이라며 “핵심 피의자 구속 실패, 무죄가 반복된다는 건 현재의 수사 관행을 바꿔야 할 시점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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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