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사진)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9·11소송법’이 의회에서 압도적 표차로 확정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이 의회에서 무력화된 것은 집권 이후 처음이다. 특히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의원도 대거 등을 돌려 내년 1월 퇴임하는 오바마 대통령이 급속히 레임덕에 빠지게 됐다. 오는 11월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 상원과 하원은 28일(현지시간) 9·11소송법을 표결에 부쳐 각각 97대 1과, 348대 77의 압도적 표차로 재의결했다. 9·11소송법은 9·11테러 희생자 유가족이 테러자금 지원설 등 9·11 연루 의혹이 제기된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난 5월과 이달 9일 각각 상원과 하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이익을 해친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사우디와의 외교 마찰은 물론 외국에서 미국을 상대로 비슷한 법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오바마 대통령은 상원 미치 매코널 공화당 원내대표와 해리 리드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각각 서한을 보내 “이 법은 테러공격으로부터 미국인을 보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테러 대응도 개선하지 못한다”며 “9·11테러 희생자 가족을 돕는 데 전폭 지원하겠다”고 설득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 소속 의원뿐 아니라 민주당 의원도 대거 오바마 대통령의 호소를 외면하고 법안에 찬성했다. 상원에서는 유일하게 리드 원내대표만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을 지지하고 법안 통과에 반대했다.
의원들이 대거 오바마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것은 오는 11월 8일 대선과 함께 열리는 의원 선거를 의식해서다. 미국에서 이슬람 테러사건이 잇따르자 유권자의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안을 공동 발의한 민주당의 찰스 슈머 상원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가볍게 보지 않는다”면서도 “외교적 마찰이 발생하더라도 9·11테러 희생자의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거부권이 뒤집히자 분노했다. 그는 “선거를 의식한 의원들이 정치적으로 표를 던졌다”며 “이 법이 어떤 위험한 선례를 만들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도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거부권이 뒤집힌 이후 가장 당혹스러운 일”이라고 반발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힘 빠진 오바마… 美의회, 거부권 발동 ‘9·11소송법’ 재의결
입력 2016-09-30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