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연구·개발(R&D) 정책이 언론에 보도되는 핫 기술에만 치중하는데, 카이스트라면 이런 일을 해야 한다. 이렇게 멀리 봐야 오래간다.”(kyun***) “반짝 쇼가 아닌 지속 가능한 연구 시스템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jdki***) 지난 24일자 국민일보 1면에 보도된 ‘돈 안 되는 연구 해봐라. 실패해도 괜찮다’란 제목의 기사 인터넷판에 달린 100여개 댓글 중 일부다. 기사는 우리나라 대표 과학기술 특화 대학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최근 추진 중인 ‘그랜드챌린지 30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이었다.
인류 지식의 근본 질문이나 글로벌 난제 등 그동안 눈길을 많이 주지 않았던 ‘돈 안 되는 모험 연구’에 과제당 매년 2000만원씩 최대 30년간 지원하겠다는 게 골자다. 연구주제는 ‘현재 핫이슈가 아니고 10년 안에 상업화가 불가능해야 한다’는 의외의 단서를 달았다. 연구 결과의 성공 여부는 평가하지 않는다. 대개 3∼5년 지원하고 그 성과를 요구하는 국내 연구 풍토에서 카이스트의 역발상에 ‘정말 잘한 일이다’ ‘시작이 중요하다’ ‘일본은 이미 하고 있더라, 우리도 힘내자’ 같은 응원과 기대가 쏟아졌다.
카이스트의 ‘한 우물 파기’ 연구 프로젝트는 2014년 강성모 총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그해 10월 노벨 물리학상은 ‘청색 발광다이오드’를 개발한 나고야대 아카사키 이사무 교수 등 일본 과학자 3명에게 돌아갔다. 아카사키 교수가 1965년 처음 관련 연구를 시작하고 49년이 지나서야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강 총장은 “위대한 성과는 연구자가 하고 싶은 연구를 장기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올 가능성이 많다”며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1년여 준비 끝에 올해 상반기부터 프로젝트명 그대로 ‘위대한 도전’에 나섰다.
일각에선 “대학과 공공 연구기관이 애초부터 해야 할 일을 이제서야?” “순수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은 나라의 의무인데…”와 같은 반응이 나온다. 그간 단기 성과 위주, 사업화가 쉬운 연구에 치중해 온 국내 대학의 연구 환경과 정부 정책에 대한 아쉬움, 한탄이 묻어난다. 일부 대학들은 연구는커녕 돈 안 되는 분야를 폐지하거나 통폐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부는 매년 기초과학 투자를 늘리고 연구과제 공모·평가 방식을 바꾸고 있다지만 실제 대학 등 일선 연구기관에서의 체감도는 낮다. 최근 저명 과학자 수백명이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발표한 것도 이 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
카이스트의 시도에 대해 ‘효과가 미지수’라거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랜드챌린지 30 프로젝트에 선정된 연구과제는 성패를 따지지 않는다. 때문에 ‘돈 주고 책임 안 묻는’ 시스템이 얼마나 국내 연구 풍토를 바꿀 수 있을지, 자칫 연구자들을 나태하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나온다. 한 네티즌은 “시도는 좋은데 악용만 안 하면…”(dhki***)이라고 했다. 실제 우리는 연구 현장에서 연구비를 빼돌려 엉뚱하게 쓰다 걸린 사례를 숱하게 봐 왔다. 카이스트는 ‘성실 실패’ 인정에 따른 대책을 세워놔야 할 것 같다.
다음달 3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노벨상이 잇따라 발표된다. 바라건대 한국의 첫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오면 좋겠지만 이번에도 명단에 없다면 또 매스컴에선 국내 기초과학 인프라와 연구 환경에 대해 한동안 떠들 것이다. 노벨상이 금방 주어지는 게 아님은 명약관화하다. 카이스트의 ‘역발상 도전’이 노벨상 수상 여부를 떠나 우리나라 연구문화를 바꾸는 시금석이 됐으면 한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
[세상만사-민태원] 카이스트에 대한 기대와 우려
입력 2016-09-29 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