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사울의 아들

입력 2016-09-29 17:48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에는 가스실에서 살해된 유대인들의 시신을 소각로로 운반하고, 소각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하는 유대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와 강제로 수행했던 작업을 증언하는 기록을 남겼으며, 이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사울의 아들’이다. 영화의 주인공 사울은 가스실에서 불가사의하게 숨이 붙어 있던 한 아이가 의사의 손에 질식사하고 부검을 당할 상황에 놓이는 것을 목격한다. 그는 아이의 시신을 빼돌려 숨긴 뒤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면서 제대로 된 의식을 치르고 땅에 묻어주기 위해 랍비를 찾아 헤맨다. 동료들이 일으킨 폭동의 혼란 속에서도 그는 자기 목숨이 위험에 처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넝마로 감싸서 어깨에 둘러멘 아이의 시신을 결코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비록 초점이 흐려져 있거나 연기로 뿌옇게 뒤덮인 상태였지만, 인간이 같은 인간의 시신을 폐기물이나 고기 토막처럼 취급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그것이 상상이나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임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사울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었겠지만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과연 존엄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인간이 만약 존엄하다면, 단 한 번의 삶을 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타인의 죽음을 목격하는 우리 모두가 같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인간을 목적으로만 대해야 하고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존엄성은, 우리들 모두 몸이 묶인 채 바다에 던져진 것 같은 공동운명이 전제된 것이다. 당신의 존엄을 내가 지켜주지 않는다면 나도 존엄하지 않다. 그래야 할 이유도 없으며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한 인간의 죽음을 두고 ‘시체팔이’나 ‘사망유희’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존엄할 수 없다. 317일간 고통스러운 병상에 있던 고 백남기 선생의 죽음을 애도한다. 모두가 존엄한 곳에서 편안히 쉬시길.

부희령(소설가)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