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정란 <5> ‘시집살이 스트레스’에 마음도 몸도 바닥으로

입력 2016-09-29 20:58
김정란 권사(맨 오른쪽)가 경기도 부천의 예식장에서 근무할 때 직장 동료들과 함께한 모습.

‘인생은 파도와 같다’라는 말이 있다.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높이 칠 때가 있고 낮게 칠 때도 있다. 또 잔잔할 때도 있다. 만약 우리 인생이 평탄하니 잔잔하게 흘러간다면 과연 행복할까. 살면서 수차례 힘든 시간을 견디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 인간은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는 것이다.

결혼 후에도 예식장 일을 계속했던 나는 직장 다니랴, 집안일 하랴, 쉴 틈이 없었다. 시어머니, 시누이들과 함께 살다 보니 집에서조차 긴장된 채 살아야 했다. 게다가 시누이들은 주말에도 밖에 나가 일하는 나를 곱게 보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것도 못마땅해 했다. 집에서조차 맘 편히 쉴 수 없었던 나는 정신·육체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남편에게 이야기를 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그런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몸과 마음이 지친 나는 짐을 싸들고 군산의 오빠 집으로 내려갔다. 남편은 그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군산으로 부랴부랴 나를 데리러왔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둘 만의 시간을 갖게 된 우리는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했다.

남편과 대화를 하다보니 그동안 나만 괴로웠던 게 아님을 깨달았다. 그도 나만큼이나 힘들었다고 했다. 남편은 “퇴근해 집에 들어와 봤자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집이 싫어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분가를 선언하고 이사를 했다. 그러나 거리상으로만 멀어졌을 뿐, 시누이들의 간섭은 여전했다. 이를 못 견딘 내 몸에선 결국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기다리던 아이의 소식이 없자 산부인과를 찾아갔는데, 검사결과 난소에서 악성종양이 발견된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아직 젊은데, 아직 아이도 못 가졌는데…. 하나님 너무하십니다. 제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나요.” 하염없이 원망의 눈물을 흘렸다. 큰 병원에서 제대로 다시 검사를 받았다. 일주일을 기다려 들은 결과는 악성이 아닌 양성. 일주일새 원망의 눈물은 기쁨의 눈물로 바뀌었다. 병원에선 종양의 크기가 크다며 수술을 권했다. 수술을 받으니 몸은 더 약해졌고 체중도 43㎏까지 빠졌다. 더 이상 직장생활을 하는 건 무리였다.

문득 이런 큰일을 겪고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간 예식장에서 주말까지 일하느라 어느새 교회를 잊고 산 지 5년이나 됐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어쩌면 시댁과의 갈등도 하나님의 간절한 부르심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했다. “여보, 우리 교회에 가자.”

그날 이후 말씀을 곁에 두고 기도와 찬송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생겨도 주일은 꼭 지켰다. 예배를 통해 나는 서서히 회복됐다. 그렇게 상한 감정을 치유하니 먼저 시어머니와 시누이들과의 관계가 달라졌다. 내가 더 순종하고 그들을 따랐다. 부부 관계 역시 돈독해졌다. 우리 부부는 어떤 일이든 대화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남편은 성실함과 자상함으로 지금까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시련이나 아픔, 상처 뒤에는 분명 하나님의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