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에 거주하는 한 경제부처 A과장은 28일부터 외부 인사들과 점심·저녁식사 약속을 전혀 잡지 않았다. 평소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 식사 약속을 빼곡하게 잡던 그였다. A과장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에 따라 각자 계산하면 아무 문제 없다고는 하지만 하루아침에 식사문화가 그렇게 바뀌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괜히 법 시행 초반에 시범케이스로 걸릴 걱정 때문에 당분간은 사람을 아예 만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공무원 도시 세종시 자체의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대가성이나 부정청탁 소지가 없다면 3만원까지는 식사비를 내줄 수 있다고는 하지만 공무원들은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만큼 식사 약속은 일단 만들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B과장은 “술자리는 엄두도 못 내고 정 약속을 잡아야 하는 경우에는 아주 간단하게 ‘더치페이’로 점심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실 계획”이라고 했다. 가뜩이나 세종시 공무원들이 서울과 멀어 정책의 현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공무원들이 외부인과의 만남마저 피하면서 세종시가 더욱 고립될 것이라는 걱정도 나온다.
국세청, 국민안전처 등이 밀집해 있는 세종시 첫마을 부근 대형 고깃집은 김영란법의 직격탄을 맞은 모습이었다. 방 24개가 있는 식당으로 정부부처와 산하기관 등의 회식과 간담회가 잦았지만 28일 점심시간에는 대부분 자리가 비어 있었다. 식당 관계자는 “2만5000원짜리 메뉴를 내놓으며 법 시행에 대비했지만 당분간은 영업에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한 공무원은 “당분간은 란파라치(김영란법 파파라치)가 활개칠 수 있어 되도록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불가피하면 세종시 주요 식당가는 피하고 조치원 등 외곽에 있는 음식점을 찾아야 할 듯하다”고 했다.
정부서울청사 주변도 상황이 비슷했다. 청사 인근 한 복어요리집은 홀에 있는 테이블 5자리 중 3자리가 비어 있었다. 이 식당은 지난달 복매운탕과 복지리 가격을 3만2000원에서 2만8000원으로 낮췄지만 손님들의 발길을 끌지는 못했다. 식당 주인은 “김영란법 전날은 예약전화가 10통도 넘게 왔는데 오늘은 3통에 그쳤다”며 허탈해했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속이 타는 분위기다. 경기도 한 자치단체 서울사무소 C팀장은 “예전에는 국비를 확보하려고 중앙부처를 찾아가는 일이 많았는데 이제는 김영란법 발효로 그렇게 할 수 없게 됐다. 아예 만나주지 않는다”고 했다.
광역단체에서부터 기초자치단체의 상당수는 서울사무소를 두고 국회와 중앙부처 동향 파악, 국비 확보, 시정 홍보 등을 통해 정부부처, 국회와의 업무 협조를 위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그런데 김영란법이 시행되자 법 시행 초기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지자체 공무원들과의 만남을 꺼리고 있다. C팀장은 “부정청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치단체를 위한 예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인데 이마저 어렵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국회 주변의 서울 여의도 고급 식당들은 국정감사 기간인데도 한산했다. 정치인들이 많이 찾는 한 중식당 주인은 “9개 룸 중 단 한 곳도 저녁 예약이 안 들어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국회 보좌진들 사이에서 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여의도 음식점 리스트’가 돌기도 했다. 한 야당 초선 의원은 출입기자들과 점심을 먹고 1만5000원씩 더치페이했다.
해양수산부는 법 시행으로 수산물 소비심리가 위축되지 않도록 29일부터 전국 이마트 70개 지점과 함께 수산물 대전을 여는 등 소비촉진 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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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유성열 이도경 기자
강희청 오주환 이종선 고승혁 기자
nukuva@kmib.co.kr
[김영란법 시행 첫날]“만나러 오지마라”… 시범케이스 걸릴라 약속 꺼려
입력 2016-09-29 00:01 수정 2016-09-29 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