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빚져야 청춘이다?… 88만원세대의 딴이름 ‘채무세대’

입력 2016-09-29 18:37
청년부채 탕감 운동단체인 청춘희년네트워크가 지난해 4월 출범 기념으로 서울 홍대 앞에서 벌인 ‘희년행진’ 모습.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의 저자 천주희씨는 청춘희년네트워크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사이행성 제공
대출을 받아서 대학을 다니는 일이 어느새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그 당연한 현실 속에서 대학생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는 부채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고한다.

저자 천주희(30)씨는 청년부채 연구자이자 운동가로 자신의 경험과 25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4년 만에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05년 3월 대학에 입학했으니 11년 만에 대학 문을 나왔다.” 그는 10년간 여덟 차례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대출금을 갚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쉼없이 알바를 했고, 휴학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1300만원의 빚을 안고 대학 문을 나왔다. 그가 학자금 대출을 착실하게 납기일에 맞춰 상환한다면, 11년 후인 2027년에야 다 갚을 수 있다.

저자의 계산에 따르면, 지방 출신으로 서울에서 5년 동안 대학생으로 살면서 쓰는 돈이 기본 생활비용을 포함하면 약 1억1300만원 된다. 대학원을 3년에 마친다고 하면 8년간 총 비용은 약 2억원에 이른다.

한국에서 대학(원)생이 된다는 건 이 정도로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런데도 너나 없이 다 대학에 간다. 부모도, 교사도, 주변 사람들도 다 “대학은 가야 한다, 빚을 내서라도 가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고, 이 사회가 출신 대학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대학생들이 부채와 함께 스무 살 인생을 시작한다. “서울권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 중 한국장학재단 학자금 대출자 비율은 약 25%로 전체 대학(원)생의 4분의 1 가량이 학자금 대출을 받으며 대학에 다니고 있다.” 저자는 부채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는 한 청년의 인터뷰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 어느덧 온종일 굶는 것이 익숙해졌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내가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느꼈던 익숙함의 감각이 빚을 지는 것에 대한 부담과 굶주림에 대한 익숙함이었기 때문이다.”

부채는 이 시대 청년들의 가슴에 묵직하게 얹힌 돌덩이다. 이 책은 그동안 청년취업을 중심으로 논의되던 청년문제에 청년부채라는 새로운 주제를 추가한다. 빚이 청년들의 일상과 문화, 감정, 선택, 꿈 등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세밀하게 조명한다. 또 등록금 제도, 학자금 대출 제도, 장학금 제도 등을 검토하면서 청년부채의 구조적 원인을 분석한다. 오늘날 청년의 현실을 말할 때 부채 문제는 공부나 취업만큼 중요한 요소라는 걸 이 책은 강렬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학자금 대출이 대학(원)생의 기본 조건이 되었다고 보면서, 오늘날의 대학(원)생을 ‘학생-채무자’ 또는 ‘채무세대’로 정의한다. 그리고 채무 부담에 짓눌려 있는 젊은이들에게 그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니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이 사회를 향해 해결을 함께 요구하자고 주장한다.

이 책은 요즘 청년들을 보면서 왜 이렇게 경쟁적일까, 왜 그렇게 개인적일까, 왜 위축돼 있고 보수적일까,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힌트를 준다. 어쩌면 빚이 문제인지 모른다. 부채에서 비롯된 부담감, 수치심, 압박감, 그런 게 혹시 청년들을 차갑게 만드는 게 아닐까.

“삶 자체가 분할상환 같은 것이랄까… ‘겨우 마이너스에서 벗어나 0점에서 시작하려하니 이미 40세가 되어 버렸다’라는 말은 나의 현재이자 미래처럼 느껴졌다.”

대학원을 마치고 서른이 된 젊은 여성이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는 사회라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게 아닐까. 이 책이 청년부채 해결 운동을 점화시킬지 주목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