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 김영랑, 이효석, 현진건, 김남천, 김동인…. 시와 단편소설로 친숙한 한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문인들이다. 이들에게 배우는 ‘글쓰기 비법’이라는 출판사의 캐치프레이즈에 혹해서 집어든 책이다.
그러나 이들 문인 14명이 1930∼50년대 신문·잡지 등에 기고한 글을 묶은 이 책에서 우리가 얻는 것은 실용적인 글쓰기 정보가 아니다. 오히려 글을 잘 쓰기 위해 대가들도 얼마나 고민하고 노력하는지 생생한 육성을 통해 들으며 위안을 받게 된다. 작가로서 살아가는 일의 힘겨움에 공감하며 절차탁마해 탄생한 그들의 문학 작품을 다시 보게 된다.
‘운수 좋은 날’의 작가 현진건은 “펜을 들고 원고를 대하기가 무시무시할 지경이다. (중략) 무딘 붓끝으로 말미암아 지긋지긋한 번민과 고뇌가 뒷덜미를 움켜잡는다”고 토로했다. ‘벙어리 삼룡’의 나도향은 심지어 “무엇을 쓴다는 것이 죄악 같을 뿐”이라고 했다.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털어놓기도 한다. 카프 문학을 대표하는 김남천은 “어떤 지식이건 어렴풋이 알아서는 도저히 붓을 댈 수 없다. 사소한 부분까지 알아두지 않으면 단 한줄의 묘사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소설 쓰기에서 요구되는 정보의 치밀성을 전했다. 노천명은 좋은 소재를 찾아 쓰레기통을 헤쳐서라도 장미꽃을 피워야 한다고 피력했다.
문학을 해서는 먹고 살 수 없는 현실도 넋두리한다. ‘탁류’로 식민지 수탈을 리얼하게 고발했던 소설가 채만식. 그는 월급쟁이로 살다가는 소설은커녕 그 근처에도 어른거리지 못할 것이라며 호기롭게 신문기자를 그만뒀다. 그러나 준비 없는 사표였던지라 결국 고료에 목매는 처지가 된다. ‘백치 아다다’의 작가 계용묵은 한국전쟁 때 제주로 피난을 가서 공동수용소에는 가기 싫어 다방에 죽치고 앉아 추위를 피했던 궁상맞은 모습도 공개했다.
흥미로운 건 김영랑, 계용묵, 이효석 등 여러 문인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예찬이다. 김영랑은 기교가 좀 부족하고 표현력이 따르지 못해도 인생을 생각하는 크게 담긴 마음이 작품이라면 얼마든지 가치를 언급할 수 있다면서 그를 예로 들었다. 계용묵 역시 도스토옙스키가 악문으로 소문났음에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말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대가들의 민낯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좋은 글 쓰기’ 대가들의 절절한 고뇌
입력 2016-09-29 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