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 질환’ 치료 벗어나 무분별한 ‘맞춤 인간’ 우려

입력 2016-09-28 17:30 수정 2016-09-28 18:02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세 부모 아이의 체외수정 기술은 의학적으로는 크게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현재의 시험관아기 시술 프로그램의 핵이식 기술을 기반으로 발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에 있는 ‘뉴 호프 퍼틸리티 센터’(NHFC) 존 장 박사팀은 5개월 전 세 부모 체외수정 시술이 가능한 멕시코에서 건강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기증한 여성의 난자에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이상을 가진 엄마의 핵(DNA)을 융합했다. 이어 아빠의 정자를 체외에서 수정하는 방법으로 ‘세 부모 아기’를 낳았다.

이런 복잡한 체외수정을 시도한 것은 엄마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이상 때문이었다. 실제 요르단계로 알려진 아기 부모는 이번 체외수정 기술에 앞서 기존 핵이식(PNT) 기술로 6차례나 체외수정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가 음식을 통해 섭취한 영양소를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발전소 같은 역할을 하는 미토콘드리아는 엄마로부터만 물려받는 세포소기관이다. 정자와 난자가 뭉칠 때 난자의 미토콘드리아를 품고 있는 세포질 성분이 그대로 수정란에 옮겨진다.

하지만 2만개 넘는 인간의 유전자 중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대물림되는 유전자는 단 37개에 불과하다. 세 부모 아기의 머리카락이나 눈 색깔 등 일반적 유전형질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와 관계가 없다. 모든 유전형질 가운데 0.1%만 난자 기증자를 닮고 나머지 유전형질은 원래 부모에게 물려받는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에 이상이 있으면 당뇨 청각장애 근육쇠약증 점진적 시각장애, 간질 간기능장애, 치매 등의 질병에 걸리게 된다. 대부분 사산하지만 어렵게 출산에 성공하더라도 생후 2∼3년 유전병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생빈도 역시 6500명당 1명꼴이다.

의학계는 세 부모 아기 시술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이상에 의한 유전질환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복잡한 윤리적·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실제 적용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삼의료재단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은 28일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여성이 아기를 가지려면 건강한 여성의 난자를 기증받아 남편의 정자를 수정하는 체외수정 시술이 필요한데 현재로선 기술적 어려움보다 기증자를 찾는 게 더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종교계는 해당 시술이 난자와 배아를 파괴하기 때문에 윤리적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생명윤리 경시 현상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구인회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생명윤리학과 교수는 “생명을 살리는 게 의사가 해야 할 일인데, 시술과정에서 많은 배아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세 부모 아기는 원초적으로 생명윤리 및 의료윤리의 금기 선을 넘어서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김일순 연세대 명예교수는 “세 부모 아기는 나중에 커서 정체성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이 생명윤리법을 통해 유전자 조작에 의한 체외수정 시술을 금지하고 있다. 굳이 생명윤리 파괴 문제가 아니라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선 반드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박상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장(안양샘병원 이사장)은 “2세를 갖고 싶은 불임부부의 열망을 이해하지만 임신을 위한 체외수정 과정에서 생명윤리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며 “또한 나중에 미토콘드리아를 제공한 여성이 모성(母性)을 주장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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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