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티끌과 재같은 우리를…

입력 2016-09-28 21:01

욥은 환난의 때가 지나가기를 목마르게 기다리다 지쳤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를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욥 30:19)라고 탄식했습니다. 진흙, 티끌, 재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철저하게 부서지고 깨어진 사람을 가리킵니다. 쓸모없다 허무하다 가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 욥에게 하나님은 오묘한 창조 세계의 신비(욥 38:1∼39:30)와 거대한 피조물인 베헤못과 리워야단(욥 40:15∼41:34)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이제 소 같이 풀을 먹는 베헤못을 볼지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 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

본문은 그것을 본 사람의 반응입니다. 그 거대하고 힘 있는 동물들보다도 자신을 더 세심하게 보살피는 하나님을 그는 만났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자신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말들을) 거두고 티끌과 재에 대한 제 생각을 달리하겠나이다.”(욥 42:6, 직역)

개역개정은 6절의 ‘나캄’을 회개로 옮겼습니다. 이 말은 본디 ‘생각을 변화시키다(달리하다)’ ‘위로하다’는 뜻입니다. 그는 무엇에 관한 생각을 바꾸었나요. ‘아파르 봐에페르’(티끌과 재)입니다. 하나님은 티끌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창조주이신 그 하나님을 욥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가 이런 신앙을 회복한 때가 언제입니까. 그에게 불어닥친 환난이 아직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망가진 그 몸도, 상처 입은 그 심정도 아직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날아가 버린 재산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한때 자신을 높이며 아부하던 이웃은 물론 자신의 아내와 친구들마저도 아픈 그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면서 그는 자신을 티끌과 재라고 탄식하며 비하하던 생각을 바꿨습니다.

고통에 몰입할 때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신 줄도 몰랐습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부활입니다. 영적으로 부활한 욥에게 하나님은 회복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욥 42:10∼17). 자신을 티끌로 재로 여기던 자기 비하에서 벗어나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욥의 회복이 시작됐습니다. 자기연민에서 벗어나 자신이 창조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음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세상 풍파 앞에서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 몸에 침입하는 병균 앞에서 무기력합니다. 우리 마음에 찾아오는 상처에 무너지곤 합니다. 한순간 이겨내고 싶지만 그렇게 물러갈 것이라면 그것은 환난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세상을 이겨낼 힘의 근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 무궁히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완전한 구원자이십니다. 때때로 스스로가 비참하게 느껴질 때 조용히 다가와 손을 잡아주시는 분입니다. 때때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우리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분입니다. 때때로 가해자가 되어 마음이 무거울 때 우울한 우리 마음을 도닥거리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런 예수님의 사람입니다.

정현진 목사 (서울 수도교회)

약력=△1960년 파주 출생 △한신대 졸업 △독일 요한네스 구텐베르크(마인츠)대(신학박사) △한신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