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완구(66) 전 국무총리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 1월 유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은 8개월 만에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성 전 회장의 사망 직전 인터뷰와 정치인의 이름이 적힌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를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즉각 상고 의사를 밝히면서 이 전 총리의 유무죄는 대법원이 최종 판가름하게 됐다. ‘망자(亡者)의 메모’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판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이상주)는 27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총리에 대해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1심은 “성 전 회장의 사망 직전 통화 내용과 정치인 리스트가 적힌 메모, 성 전 회장 측근들의 진술을 믿을 수 있다”며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특히 성 전 회장의 마지막 언론 인터뷰와 시신에서 발견된 메모를 ‘특신 상태’(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로 봤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의 경우 법정에서 진술·조사되지 않거나, 피고인이 반대신문을 하지 못할 경우 증거로 채택할 수 없도록 한다. 1심 재판부는 성 회장이 남긴 ‘유품’을 특신 상태로 인정하고 유죄의 증거로 삼았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 판결을 정반대로 뒤집었다. 재판부는 특신 상태와 관련된 과거 대법원 판결 11건을 조목조목 거론하며 “성 전 회장의 마지막 통화 내용과 메모 등이 ‘허위진술’에 대한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성 전 회장이 사망 전 측근들과의 대책 회의에서 이 전 총리에 대한 금품 공여 사실을 거론하지 않은 점, 당시 경남기업의 비자금 조성 상황, 마지막 언론 인터뷰에서 금품 공여 액수를 ‘한, 한 3000만원’이라고 밝힌 과정 등이 모든 의심을 배제하기에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또 성 전 회장의 운전기사, 수행비서, 자금관리인 등의 진술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3000만원을 쇼핑백에 담아간 과정 등에 대한 측근들의 진술에 모호한 점이 있다”며 “이들은 진술 당시 검찰 수사 대상이거나 형사재판을 받고 있었다”고 말했다. “관련자들이 전부 입을 맞춰 거짓 진술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1심 판단과 다르게 본 것이다.
이날 법정에 나온 이 전 총리는 1시간 동안 진행된 선고를 선 채 경청했다. 소법정을 찾은 이 전 총리의 지지자 수십명은 재판부의 ‘무죄’ 선고가 떨어지기 전부터 환호성을 질렀다. 이로 인해 재판부가 다시 한 번 주문을 읽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선고 직후 취재진과 만난 이 전 총리는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마음이 무겁고 송구스럽고, 진실을 밝혀주셔서 (재판부에) 대단히 감사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앞으로 검찰권의 과도한, 그리고 무리한 행사는 자제돼야 한다. 국민적 고민을 해야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계 복귀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3심이 남아 있다”며 “언급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말을 아꼈다.
이번 판결은 ‘성완종 리스트’로 지난 8일 1심서 유죄를 선고받은 홍준표(62) 경남지사의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다만 홍 지사의 경우 ‘금품 전달자’인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법정 진술을 하고 있어 차이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망자의 메모 유죄 증거 안돼” 이완구 항소심 ‘무죄’
입력 2016-09-28 0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