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31일 미국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지 고작 두 달된 스물두살짜리 투수는 의사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통보를 받았다. 허리에서 골수암의 일종인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이 발견됐다는 진단이었다.
허리통증은 같은 달 초순 발생했던 경미한 교통사고의 후유증인줄 알았고, 병원 검진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걱정하지 않았다. 암 진단은 이제 막 꽃을 피운 자신의 야구인생에 대한 사형선고와 다름 없었다.
시카고 컵스의 에이스 투수 존 레스터(32)는 그렇게 10년 전 다시 태어났다. 레스터는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의 각광받는 ‘슈퍼루키’였다. 뒤늦게 합류한 선발 로테이션에서 불과 두 달 동안 7승을 수확했다. 보스턴은 2004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두 시즌 연속 부진에 빠져 전전긍긍했지만 레스터만큼은 굳건히 마운드를 지켰다.
암 진단을 받은 프로선수는 스스로 은퇴하거나 구단으로 버림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당시 보스턴 단장이던 테오 엡스타인(43)은 레스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었다. 레스터는 믿음에 보답하듯 불굴의 의지로 암을 극복했고, 성공적으로 마운드에 복귀했다. 4개월 동안 무려 네 번의 항암치료를 견뎌 같은 해 12월 완치 판정을 받았다. 다음해 7월 복귀한 보스턴의 시즌 후반기 대반격을 주도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일궜다.
인생의 중대 고비를 넘긴 레스터는 마운드에서만 일류선수가 아니었다. 꾸준히 암재단을 후원하고 소아암환자 후원을 독려하는 기고를 하며 자신의 경험을 사회에 환원했다. 오랜 시간 메이저리그의 정상급 투수로 활약하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은 이유 역시 밑바닥으로 떨어질 뻔했던 10년 전의 기억이 있어서다.
레스터의 기량과 태도는 지난해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컵스로 이적한 뒤에도 변하지 않았다. 2011년 10월 컵스 단장으로 먼저 옮긴 엡스타인의 부름을 받고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지금은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이 팀의 선봉장이다.
선발진에서 가장 먼저 투입되는 제1선발이고, 올 시즌 19승(4패)으로 내셔널리그 다승 1위에 있는 독보적 에이스다. 레스터가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자, 제이크 아리에타(18승7패), 카일 핸드릭스(16승8패)가 뒤를 받치는 컵스의 선발 3인방은 50승 이상을 합작해냈다.
여기에 시속 160㎞대의 강속구를 뿌리는 마무리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이 지난 7월 뉴욕 양키스에서 컵스로 합류한 뒤부터 레스터의 어깨는 더 가벼워졌다. 채프먼은 컵스에서 불과 2개월 동안 3승 31세이브(시즌 4승1패 36세이브 4승1패)를 수확했다. 크리스 브라이언트(39홈런) 앤서니 리조(31홈런) 등 강타자들도 레스터의 승리를 견인하는 동료들이다.
마운드부터 타선까지 무엇 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컵스는 올 시즌 30개 팀 중 유일하게 100승을 찍었다. 컵스는 27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PNC파크에서 열린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원정경기에서 12대 2로 대승하고 올 시즌 100번째 승리(56패)를 수확했다.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우승은 이미 확정됐지만 다른 팀들을 압도한 세 자릿수 승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숫자다. 6할 승률을 기록한 팀은 컵스뿐이다.
레스터에게 남은 과제는 컵스가 1945년부터 챔피언십시리즈의 문턱을 넘지 못한 ‘염소의 저주’를 깨고 1908년부터 탈환하지 못한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안기는 것이다.
컵스가 100승을 달성한 경기에서 맞은편에 있던 피츠버그의 4번 타자로 선발 출전한 강정호(29)는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한편 마이애미 말린스는 전날 보트 전복사고로 사망한 투수 호세 페르난데스의 등번호 16번의 영구결번을 결정했다. 마이애미에서 영구결번은 모든 구단에서 결번시킨 재키 로빈슨의 번호 ‘42’에 이어 두 번째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암 이긴 레스터, ‘염소의 저주’ 풀기 강속구
입력 2016-09-28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