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도 난감… 과태료 부과·심리 떠맡아 ‘업무폭탄’

입력 2016-09-28 00:00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이 28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세간(世間)의 이목이 법원에 집중되고 있다. 법원이 어떤 판례를 내놓느냐에 따라 법 적용 범위·한계 등 여러 가지 논란의 ‘경계선’이 그어지기 때문이다. 또 상대적으로 가벼운 과태료 사안도 법원이 금액 산정부터 재판 여부 등을 결정해야 한다. 법원 내부에선 ‘업무상 직격탄을 맞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원은 “우선 시행 과정을 지켜보고, 유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법원이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과태료 사건’의 폭증(暴增)이다. 기존 주차위반 등 일반 과태료 사안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 등 행정청이 과태료를 부과·징수해 왔다. 법원은 당사자가 이의신청을 한 경우에만 과태료가 적법한지를 판단했다. 관련 자료가 충분한 경우 재판을 열지 않고 주로 서면심리로 결정했다.

반면 김영란법 과태료 사건은 법원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김영란법이 과태료 부과 기관을 법원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을 위반한 공직자의 소속 기관장은 위반 내용이 과태료 사안일 경우 이를 법원에 통보하면 된다. 법원은 기관장에게 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검토한 뒤 과태료 액수 산정, 재판 여부 등을 결정한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은 약 400만명이다. 이들의 과태료 사건들이 모두 전국 법원에 통보되고, 각급 법원에서 많아야 3∼4명에 불과한 과태료 담당 판사들이 이를 전부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김영란법의 과태료 사건은 기존 과태료 사건과 양과 질이 다르다는 게 법원의 시각이다. 특히 법 시행 초기에는 과태료 사건이라도 대부분 재판을 열어 따져봐야 한다고 예상하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27일 “김영란법 과태료 사건은 주차위반 사건 등과는 그 내용이나 사회에 미치는 파장 등이 질적으로 다르다”며 “서면심리만 하느냐, 실제 재판을 열어 따져보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과태료는 법원 결정으로 부과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업무 과부하’ 등 혼란을 막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대구지법은 형사단독판사 9명을 김영란법 과태료 사건에 투입하기로 했다. 현재 기존 과태료 사건을 담당하는 민사단독판사 2명만으로는 사건을 다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법원 관계자는 “김영란법 과태료 사건은 그 성격상 형사재판에 가까워 형사 단독 법관이 담당하기로 했다”며 “법 시행 이후 상황을 주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수도권 법원의 과태료 담당 판사 10여명도 ‘과태료 재판 연구회’를 조직하고 향후 재판 절차 등 세부 내용을 논의 중이다. 다음달 중순까지 과태료 재판 관련 업무 매뉴얼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결국 ‘법이 시행돼봐야 알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짙다. 재경 지법의 한 판사는 “과태료 사건이 몇 건이나 접수될지, 관련된 증거자료는 얼마나 충실할지 솔직히 예상이 안 된다”며 “진행 상황을 봐서 인력 배치 등이 탄력적으로 이뤄질 것 같다. 전례가 없던 일이어서 당황스럽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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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