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로 1991년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처음 공개적으로 밝힌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최초 보도했던 우에무라 다카시(58)씨의 책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푸른역사)가 출간됐다. 일본에서 ‘진실’(이와나미서점)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지 7개월 만에 국내 번역된 것이다.
26일 서울 종로구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열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우에무라씨는 “일본 우익세력은 일본 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있는 저널리스트들을 협박하기 위해 나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건 내 개인의 명예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언론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끝까지 싸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우에무라씨는 한국 내 위안부 피해자의 목소리를 세상에 처음 알린 기자가 됐지만, 아베 정권 이후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세력으로부터 ‘날조기자’ ‘매국노’ 등의 비판을 받아 왔다. 특히 2014년 ‘주간문춘’이 ‘위안부 날조 아사히신문 기자가 여대 교수로’라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그에 대한 공격이 본격화됐다. 임용이 예정됐던 대학은 협박에 밀려 그의 임용을 취소했다. 그의 가족들도 “죽이겠다”는 공격에 시달렸다. 당시 고교생이던 그의 딸은 등하교 때 경찰 보호를 받아야 했다.
그는 이번 책에서 자신의 위안부 보도를 둘러싼 ‘날조 논란’에 답하면서 최근까지 진행되고 있는 ‘우에무라 공격’ 사태의 전모를 전한다. 그는 ‘우에무라 공격’을 “위안부 보도에 대한 위협”이라고 해석하면서 “내가 위안부를 정신대라고 썼다고 해서 날조기자라고 주장하는데, 당시 기사를 보면 한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다 정신대를 위안부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그런데도 위안부는 정신대와 다르다면서 유독 나만 공격하고 있으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우에무라씨는 날조 논란을 주도하는 칼럼니스트와 출판사를 상대로 도쿄와 삿포로에서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의 도쿄 재판에는 변호사 170여명이 자원봉사로 변호인단을 구성해 참여하고 있다. 지식인과 시민들의 공동성명, 서명운동도 이어졌고, ‘지지마라 호쿠세이의 모임’ ‘우에무라 응원대’ 등 지원단체들도 생겨났다. 그는 “내가 공격을 받으면 일본에 언론자유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많은 시민들이 나의 재판을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올 초부터 가톨릭대 초빙교수로 한국에 와 강의를 하면서 일본 재판에 참석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한일합의에 대해서 “이게 끝이 아니라 계기가 돼야 하는데, ‘돈만 내면 끝’ ‘더는 말하지 말라’고 하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 기록하고 젊은세대에게 교육한다면 그게 해결에 가까운 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 “일본 정부가 할 일은 소녀상을 없애는 게 아니라 일본인의 마음속에 소녀상이 새겨지도록 기억의 계승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나에 대한 공격은 언론자유의 문제… 끝까지 싸울 것”
입력 2016-09-27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