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멕시코만. 쿠바를 떠나 멕시코로 향하던 밀항선에서 한 여성이 바다에 빠졌다. 망망대해의 어두컴컴한 밤바다였다. 허우적거리며 구조를 애원하는 여성의 다급한 외침은 숨죽이고 쪽잠을 청했던 선원과 밀항자들을 깨웠다. 하지만 모두 머뭇거릴 뿐 선뜻 구조에 나서지 않았다.
그때 16세 소년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금세 몸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검은 바다에서 멀리 떠내려가던 여성을 소년은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쳐 붙잡았다. 여성이 누군지 몰랐다. 그저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여성을 건져 배에 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힘들게 구한 여성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소년이 바다로 뛰어들지 않았으면 며칠 뒤 도착한 멕시코에서 어머니 여동생과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 없었을 것이다.
네 번째 망명시도였다. 앞서 세 번의 시도에서 쿠바 경찰에 붙잡혀 감옥살이도 했다. 간수들로부터 온갖 모욕과 짐승 취급을 당하면서도 끈질기게 밀항선에 올라탔다. 소년은 가족과 함께 멕시코에서 미국 플로리다주 템파로 건너가 망명자 신분을 얻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마이애미 말린스 에이스 투수 호세 페르난데스(24)의 ‘아메리칸드림’은 그렇게 시작됐다.
페르난데스는 1992년 쿠바 산타클라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유망주로 불릴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 하지만 올해에서야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할 정도로 폐쇄적이던 당시의 쿠바에서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페르난데스가 미국 망명을 시도한 이유였다.
미국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고교 리그에서 13승1패 평균자책점 2.35를 기록하는 동안 두 차례나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최고시속 160㎞에 육박하는 강속구도 위력적이었다. 그런 페르난데스의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 지명은 당연한 결과였다. 2011년 1라운드 전체 14순위로 마이애미의 전신 플로리다 말린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로 입문했다.
두 시즌 만에 마이너리그를 정복하고 2013년 4월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2년 동안 패스트볼은 더 빨라졌고, 위력적인 커브까지 장착했다. 데뷔 시즌 성적은 12승6패 평균자책점 2.19였다. 그해 11월 메이저리그 시상식에서 1위 표 30장 중 26장의 몰표를 받고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 경쟁자 중에는 3위 표 10장을 받고 4위에 오른 류현진(29·LA 다저스)도 있었다.
시상식장에는 망명길에 동행하지 못했던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넘을 수 없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멀어졌던 가족 모두를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 한자리로 모을 수 있을 만큼 페르난데스는 성공했다. 그래도 자만하지 않았다. 삶에 대한 강한 열망을 마운드에서 불살랐다. 가끔 강한 승부욕으로 상대 타자와 충돌했지만 폭력이나 불필요한 장외 언쟁은 없었다. 코칭스태프와 언제나 웃으며 대화했고, 동료들에겐 친절했다.
2014년 오른쪽 팔꿈치부상을 당하고 지난해 토미존수술을 받으면서 주춤했지만, 올해 16승8패 평균자책점 2.86으로 재기에 성공하면서 마이애미의 에이스로 다시 도약했다. 최근에는 단란한 가정을 꾸릴 단꿈에 빠져 있었다. 지난 20일 인스타그램에 임신한 여자친구의 사진을 공개하고 “내년 1월 아빠가 된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여기까지였다.
페르난데스는 26일 보트 전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마이애미비치를 운항하던 보트가 바위에 부딪혀 탑승자 3명이 모두 사망한 사고였다. 페르난데스는 보트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멕시코만의 아름다운 바다는 7년 전 밀항선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페르난데스를 끝내 집어삼키고 말았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마이애미 홈구장 말린스파크에서 열릴 예정이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를 취소했다. 페르난데스는 이 경기에 등판할 예정이었다. 하루 더 쉬고 다음날 오르려 했던 마운드를 이제 영원히 밟을 수 없게 됐다.
돈 매팅리(55)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페르난데스가 경기장에 들어설 때 장난감을 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했다. 열정으로 가득했던 선수를 잃었다”고 했다. 매팅리는 마치 친아들을 잃은 것처럼 펑펑 눈물을 쏟았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역경’을 아웃시켰지만… 천재투수, 떠나다
입력 2016-09-27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