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밤 경주 인근에서 발생한 지진에 온 나라가 화들짝 놀랐다. 어둠이 짙게 깔린 오후 7시44분쯤 리히터 규모 5.1의 강진이 강타했고 48분 뒤 규모 5.8의 본진(本震)이 몰아쳤다. 기상청 관측 사상 역대 최대 규모인 경주 지진은 수백㎞ 떨어진 서울, 인천, 제주 등에서도 감지될 정도로 강력했다. 이어진 여진도 지난 주말까지 규모 1.5 이상만 430회나 됐다. 이번 지진으로 경주, 울산, 대구 등지에서 모두 23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시설피해도 신고된 것만 9319건이나 된다. 건물 균열, 지붕 파손, 담장 파손, 수도배관 파열, 유리 파손 등 피해는 다양했다.
경주 강진은 우리나라가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새삼 각인시켜줬다. 지진이 일본, 칠레 등 지각활동이 활발한 환태평양 일대 ‘불의 고리’에 위치한 나라에서나 발생하는, 나와는 상관없는 재난이 아니라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초래할 현실적 위험으로 떠오른 것이다.
추석 연휴 기간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지들 사이에서 화젯거리는 단연 지진이었다. 그만큼 공포가 컸다는 방증이다. 지진은 불시에 찾아와 한순간에 많은 것을 파괴해 버린다. 가깝게는 지난 4월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규모 6.5와 7.3의 지진으로 42명이 사망하고 2000여명이 부상했다. 이재민도 20만명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 규모 6.0이 넘는, 아니 그 이상의 강진이 발생한다면…. 파괴 규모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경주 지진은 우리가 지진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초유의 재난 앞에서 정부는 허둥댔다. ‘안전 컨트롤타워’인 국민안전처는 긴급재난문자 늑장 발송, 홈페이지 접속 장애 등 초기 대응에서 허점을 노출했다. 정부나 민간의 지진 대응 매뉴얼은 부실했고, 국민들은 지진 대처요령을 잘 모르고, 시설물이나 건축물은 지진에 취약하고, 대피시설이나 구호 시스템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등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다. 지진 발생 직후 안전처를 중심으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해 상황 관리와 수습에 나서고 여진이 잦아들면서 사태가 진정돼가고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지진 대응은 이제 시작이다. 다음에는 더 강력한 지진이 올 수도 있다. 이번 지진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진 대응체계를 전면 재검토해 혁신하고 국가 차원의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이번 지진 대응 과정에 대한 철저한 복기가 출발점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대응체계를 제대로 구축하려면 장기간 꾸준한 투자를 해야 한다. 전문 인력과 설비를 보강하고, 법령과 체계를 정비하고, 내진설계를 강화하고, 활성단층 등 지진 관련 연구를 확대하고, 예산을 확충하고, 교육·훈련을 강화하는 등 전방위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활성단층 지대 인근에 원자력발전소가 밀집해 있는 것도 문제다. 대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원전에 의존해 온 전력 수급 정책도 과감하게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안전처는 이 과정에서 정부부처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지진 관련 업무를 조정하고 총괄 지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재난 발생 시 다른 부처 장관들을 지휘할 수 있는 특임권 행사도 아낄 이유가 없다. 이를 위해서는 안전처의 권한 확대와 안전정책 조정 기능에 대한 정부부처 내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우리의 ‘망각 DNA’다. “지금은 지진 대응체계 구축을 위해 무엇이든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한두 달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잊혀지지 않을까요.” 며칠 전 통화한 방재연구 분야 원로 전문가가 내뱉은 이 한마디가 자꾸 귓가를 맴돈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
[돋을새김-라동철] 지진 대응체계 전면 혁신해야
입력 2016-09-26 1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