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서북쪽 갈리시아 지방의 루고(Lugo)와 동북쪽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Barcelona). 두 도시에는 로마시대에 지어진 성벽이 천년의 세월을 넘어 현재까지 남아있다. 하지만 도시와의 일체감이나 보존 상태에서 큰 차이가 난다.
루고의 로마성벽은 시민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세계유산으로 완벽하게 보존돼 있는 반면 바르셀로나의 로마성벽은 도시개발 과정에서 대부분 파괴되고 일부분만 남아있다. 두 도시에서 로마성벽이 갖는 위상도 크게 다르다.
지난 4월 27일 해질 무렵 루고의 로마성벽(Roman Wall)에 도착했을 때 시민들이 성벽 위를 걷고 달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3세기에 만들어진 성벽이 170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성벽이 시민들의 일상생활 터전이 돼 있는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로마병사가 성벽 위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왔다갔다 했을 순시로(巡視路)에서 시민들이 한가롭게 저녁 산책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루고의 로마시대 성벽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3세기 후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베리아반도의 히스파니아(Hispania)를 정복하고 세운 도시 ‘루쿠스(Lucus)’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성벽이다.
로마장수인 막시무스(Paullus Fabius Maximus)가 황제를 대신해 루고를 설립했다. 전 세계적으로 드물게 성벽 전체가 훼손되지 않고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으며 서유럽에 세운 후기 로마시대 요새의 훌륭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루고는 루쿠스 아우구스티(Lucus Augusti)에서 기원했는데 2㎞에 이르는 성벽 자체가 도시 발전의 다양한 측면을 대변하고 있다. 아우구스투스가 원정 중에 이곳에 로마군 병영을 설치했고 바둑판 형태로 새로운 도시를 만들었다.
팍스로마나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었기에 방어벽으로 둘러쌀 필요없이 바둑판 모양의 도시 설계에 따라 건설했다. 이 마을은 풍부한 광물자원 덕분에 이후 몇세기 동안 번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2세기 중반 프랑크인과 알라만인이 변경의 요새 지대를 넘어 히스파니아에 침투해 들어왔다가 축출된 것을 계기로 도시를 에워싸는 거대한 방어벽들이 건설되었고 263∼276년 루쿠스 성벽이 완성됐다.
루고의 성곽구조를 보면 85개의 견고한 타워와 성벽으로 이뤄져 있다. 내벽과 외벽의 밖은 돌로 만들어졌고 그 안은 흙이나 물, 허문 건물의 잔해들로 채웠다.
성문은 총 10개인데 5개는 고대에, 나머지 5개는 최근에 세웠다. 5개의 계단과 진입 경사로를 지나면 난간 통로로 이어진다. 난간 통로에서 탑으로 가려면 두꺼운 성벽 안에서 발견된 여러 개의 이중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중간 탑은 현재 총 46기가 훼손되지 않고 남아 있으며 39기는 거의 혹은 일부가 파손됐다. 탑은 성벽을 따라 설치했는데 간격이 일정하지 않다. 2층 구조로 대다수가 반원 형태를 하고 있다. 탑 사이 간격은 5.35∼12.80m으로 다양하다. 탑 몇기는 조금씩 가늘어지는 절단된 원뿔 형태를 하고 있고 몇기는 장방형이다. 라 모체라(La Moschera)라고 불리는 이들 탑 중에 하나는 아치형 유리창이 2개인 상부 구조의 유물이 남아있다. 가장 많이 사용한 돌은 마감한 화강암, 특히 판암이다. 돌을 쌓은 형태와 돌의 크기는 비교적 다양하다.
원래의 성문들은 3세기 이후에 수차례 개축했다. 현재까지 가장 잘 보존된 성문으로는 팔사(Falsa) 성문과 미냐(Mina) 성문을 들 수 있다. 두개의 탑 사이에 걸친 둥근 천장의 아치는 로마시대 건축의 특징인데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은 사라진 초병 숙소의 흔적을 산 페드로(San Pedro) 성문과 성벽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루고시는 성안의 ‘전통’과 성밖의 ‘현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다. 성안에는 신전(Templo), 목욕탕(Piscina), 수로교(Acueduto) 등 다양한 로마유적이 보존돼 있다.
성벽 보존을 위해 개발을 유보한 도시답게 로마성벽에 대한 시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성벽이 단순히 과거 유물로 남아 있지 않고 시민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가 살아 숨쉬는 것 같았다.
루고의 로마성벽은 24시간 개방돼 있고 10개의 성문과 계단, 승강기 등이 갖춰져 있어 접근성이 좋다. 성안에 있는 4층 규모의 안내센터(Information Center)는 역사도시 루고의 연혁과 로마성벽 가치 발견 및 시민들의 참여 과정을 동영상으로 재미있게 제작했고 전시실에선 자세한 설명과 모형을 만날 수 있다.
루고는 한때 로마성벽을 보존해야 하는지를 놓고 시민대토론을 벌였고 결국 도시의 소중한 유산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시민들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루고는 성벽 축조의 역사를 기록하고 세계 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세계유산으로 인정받게 됐다.
이에 반해 바르셀로나의 로마성벽은 많이 파괴되고 관리상태도 부실했다. 도심 고딕지구내 카테드랄(바르셀로나 대성당) 주변에 남아 있는 로마성벽은 일반 건물의 축대나 경계로 사용되고 있었다. 안내판도 오래돼 내용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유적 보존보다는 도시 팽창을 택한 결과다.
서울이 역사문화도시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한양도성의 보존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해 루고와 바르셀로나 로마성벽 사례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 한양도성과 중국의 도성
중국의 역대 도성 가운데 현재의 난징(南京)과 한양도성이 자주 비교된다. 조선의 새도읍으로 한양도성이 축성되고 있던 시기에 중국은 명의 시대였고 그 도읍은 난징이었다.
난징은 중국 도시 중에서 독특한 존재다. 거의 모두 평지성인 중국에서 예외적으로 구릉과 강 같은 자연지형을 이용했기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의 도시와 함께 자주 언급된다.
하지만 난징의 성곽을 자세히 살펴보면 구릉의 자연지형을 이용하기는 했으나 그 방법이 포곡식 산성이나 한양도성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난징의 현존하는 성곽을 볼 때 구릉을 성곽내에 포함하고 성밖 평지와의 경계선에 성곽이 축조돼 있다. 사비도성의 나성이나 한양도성이 구릉의 능선상에 성곽을 쌓은 것과 대비된다.
명이 원나라의 대도(大都)를 베이징(北京)으로 개조해 난징으로부터 도읍을 옮기는 것과 거의 같은 시기에 조선은 한양도성을 조성했다. 그러나 한양도성과 북경성은 전혀 다른 입지, 구조, 형태의 도성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북경의 도시 중축선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한양도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자연지형과 일체화된 점인 반면 베이징은 남북을 관통하는 인공적인 도시 중심축을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 점이 바로 동시대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두 도성인 한양도성과 북경성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이상구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는 "우리 눈에 익숙해 평범하게 보이는 한양도성이 인류 전체의 문화적 성취 속에서 얼마나 독특한 존재인지, 세계적 시각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일 수 있는지 새롭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루고·바르셀로나=글·사진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
[세계유산 한양도성] 루고 로마성벽은… 과거 유물? 시민 터전!
입력 2016-09-27 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