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류인균] 소방공무원 건강관리 방안

입력 2016-09-26 17:35

미국 9·11테러 현장에서 화재 진압과 구조에 나섰던 소방관들에게서 10년이 지난 이후에도 천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여러 질환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소방공무원을 전수조사한 결과 설문 응답자 상당수에서 심각한 직무스트레스 문제가 드러나 적극적인 개입과 후속조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지난달 10일 서울소방재난본부와 이화여대가 주최한 ‘소방보건환경 비전 심포지엄’에서는 소방공무원이 작업환경에서 노출되는 유해물질, 뇌질환 위험인자 등에 대한 토론과 재해보상제도의 현황, 위험한 상황에서의 소방공무원들의 경험 등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소방공무원들은 정기적으로 특수건강검진을 받는데 약 50%가 건강 이상으로 나타난다. 건강검진을 통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빠르게 후속조치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건강검진 관련 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나아가 건강검진 결과가 축적되면 공무 중 부상 처리의 확고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소방관이 업무 중 화학적·물리적·심리적 유해인자에 빈번히 노출된다는 사실과 여러 질병에 걸릴 확률이 일반인보다 높다는 것은 여러 단면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다. 그러나 특정 시점에서 유해인자와 질병이 동시에 높게 측정된다는 사실이 반드시 원인과 결과라는 점을 뜻하지 않기 때문에 업무와 관련된 공무 중 부상 처리는 대부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유해인자 노출과 질병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현재 화재진압, 구조구급 업무 및 이와 관련돼 훈련 도중 사망한 경우 순직에 해당되지만 그밖의 업무는 일반사망으로 간주된다. 질병의 경우에는 공상 처리가 더욱 어렵다. 화재진압 및 구조구급 도중의 부상 등 인과관계가 비교적 명확한 경우는 논란이 덜하다. 그러나 일반인에도 드물지 않거나 업무와 관련됐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발생이 증가하는 경우 기존 질환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되기 어려운 경우 등에는 공무 중 부상 처리에 어려움이 있다. 소뇌위축증과 같은 희귀병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어려움을 더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건강근로자 효과’라는 현상이다. 소방관으로 채용되고, 그 이후 사망이나 이직·조기 퇴직 등을 겪지 않고, 오랜 기간 일하는 사람은 일반인 집단보다 더 건강할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해인자에 노출되었음에도 오히려 특정 질환이 일반인에 비하여 역설적으로 낮게 나타나기도 하며, 실제로는 질병 발생 위험이 소방 직무로 인해 증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의 질병 발생과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대규모 코호트(조사하는 주제와 관련된 특성을 공유하는 집단)를 대상으로 한 장기간 연구가 필요하다.

소방공무원 특수건강진단에서 우선적으로 다뤄야 할 분야는 뇌 관련 의심 질환자를 선별해 정밀검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상 소견이 발견되는 경우 즉시 검사 결과를 알려줘 조기에 질환 발병 가능성을 차단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추적 관리된 데이터는 소방공무원의 질병을 공무중 부상으로 처리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건강검진 이외에도 교대근무와 외상 사건 등에 의한 건강 영향 연구를 바탕으로 적절한 진단, 치료, 예방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또한 소방관 동료 심리상담사 양성과 현장성과 접근성이 높은 심신 건강관리 방안이 매우 필요하다. 소방공무원의 건강과 복지 개선은 궁극적으로 현장대응력 향상으로 이어져 국민 안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류인균 이화여대 석좌교수 ·뇌융합과학硏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