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입력 2016-09-26 17:45

박상영 펜싱 선수는 지난 8월 열린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점수 하나 차이에 지는 상황에서 그는 포기하지 않고 “나는 할 수 있다”고 되뇌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올림픽 대비 훈련 전부터 두 달 간 매일 전국 사찰을 돌며 기도를 올렸다 합니다. 그때마다 ‘펜싱 선수 박상영 리우올림픽 파이팅’이라는 기도 내용을 기왓장에 적어 올렸습니다. 그녀는 시합이 있던 8월 9일에는 경남 진주 인근 사찰에서 기도했습니다.

앞으로 많은 불교인들이 사찰의 기왓장을 구입하면서 기도할 것입니다. 특히 진주 인근의 사찰은 영험한 사찰로 소문이 나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는 불자(佛子)들로 붐빌 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불교도 북을 치며 통성기도하면서 기복을 강조하는 사찰이 부흥합니다. 로또 1등 당첨이 나온 복권판매소에 사람들이 줄을 서듯 기도응답이 이뤄진 사찰들에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이런 식의 기도는 고려와 조선시대부터 한국인들에게 자연스러웠습니다. 자신의 원함을 신에게 정성스럽게 간구하면 응답을 받는다는 생각이 무속과 불교, 기독교 등 한국 종교 전반에 공통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의 참된 기도가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 6:7)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시므로 중언부언할(babbling)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중언부언합니다. 자극적으로 기도해서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내 응답을 받겠다고 여깁니다.

참된 신자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지 않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십니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자신의 원함을 부인하는 것은 강력하게 날아가는 로켓의 방향을 바꾸는 것보다 힘듭니다. 기도 없이는 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속한 나라와 지역 문화, 정서를 성경으로 극복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좋은 게 좋은 식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나도록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입니다. 바알을 섬기는 이들은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고 큰 소리고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했습니다(왕상 18:28). 마치 무당들의 굿과 비슷합니다.

이러한 기도가 우리에게 침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회를 열지만, 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기도라는 명목으로 사람의 욕심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판단해야 합니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회개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원함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구하는 것이 기도임을 알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상고해야 합니다. 자신의 열심으로 기도응답을 받으려고 하기에 앞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이미 주시고자 한 약속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하나님이 정말 주시고자 하는 선물을 받아 누리기를 바랍니다.

정요석 목사 (서울 세움교회)

◇약력=△합동신학대학원대(조직신학 박사) △대신총회신학교 교수 △'소요리문답, 삶을 읽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