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40%만 하역했는데… 4조원 줄소송 위기

입력 2016-09-26 00:02

한진해운 채권단의 지원 중단이 26일이면 1개월이 된다. 피해를 입은 화주들이 배상을 요구하면 최대 4조원대에 달하는 줄소송이 진행될 예정이다. 소송이 이어지면서 법원이 해결해야 할 채권액 규모가 커져 한진해운의 회생계획 수립이 불가능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화주 손해배상 소송 잇따를 듯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25일 “화물 운송에 차질을 겪은 화주들이 하역을 마친 뒤 손해배상 소송을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 선박에 실려 있는 전체 화물가액은 14조원으로 추산된다. 업계 관계자는 “소송에 따른 배상액 규모가 적어도 1조원, 많으면 4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진해운이 지난 1일 법정관리에 돌입하고 한 달 가깝게 지났지만 총 97척의 컨테이너선 가운데 하역을 완료한 배는 24일 기준 39척에 불과하다. 전체의 40% 수준이다. 나머지 58척 중에서 국내 하역 대상인 31척을 제외하더라도 해외의 27척 문제가 더디게 풀리고 있다.

정부는 다음 달까지 한진해운 소속 컨테이너선의 90% 이상에서 하역을 완료하겠다는 방침이다. 한진그룹과 산업은행이 긴급자금을 투입한 만큼 하역 정상화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자금 투입 지체로 매일 부채가 불어나고 있어 10월 말 하역 문제가 일단락되더라도 한진해운 회생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해수부는 윤학배 차관 주재로 한진해운 승선원 현황 점검회의를 열고 생필품 잔여량이 10일 미만인 선박이 6척이고 모두 518명의 한국인 선원과 720명의 외국인 선원이 고립돼 있는 것으로 파악해 연료와 생활요수, 식량 등을 추가 지원키로 했다.

스테이오더도 지지부진

정부는 낙관하고 있지만 하역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용선주나 화주 등 채권자들로부터의 선박 압류 없이 화물을 내리기 위해서는 국가별로 압류금지명령(스테이오더) 승인을 받아야 한다. 현재까지 한진해운이 신청한 스테이오더를 받아들인 국가는 미국 일본 영국 독일 4개 국가에 불과하다. 싱가포르에서는 지난 10일 잠정 승인이 떨어졌지만 최종 승인이 미뤄지면서 15척의 한진해운 선박이 싱가포르항 주변을 맴도는 중이다.

앞서 한국과 스테이오더 협약을 맺고 이를 명문화한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 나머지 국가에서는 외교당국 간 협의를 통해 합의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스테이오더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벨기에와 호주에 스테이오더를 신청했고, 다음 주 중으로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3개국에 스테이오더를 신청한다. 아랍에미리트와 호주 인도 캐나다에도 순차적으로 신청할 예정이다.

현대상선은 ‘적극 지원’

산업은행 이종철 구조조정2실장은 지난 21일 현대상선 화주 등 해외 고객들에게 영문서한을 보내 “산업은행은 현대상선의 구조조정과 정상화를 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새로운 경영진 아래 현대상선의 경영과 자금안정성, 미래의 견실한 성장을 낙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실장은 “한진해운의 부도 이후 빚어진 심각한 글로벌 해운 위기에도 현대상선은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한국의 국적선사로서 물류 위기를 완화하고 고객에게 신뢰받는 서비스를 제공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고 썼다. 그는 “현대상선의 지속적인 성장을 계속 지원해 글로벌 해운사로서 지위를 갖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대상선의 대주주로서 수시로 고객들에게 서한을 보내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법적 구속력은 없는 비공식 서한”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진해운의 경우 우리가 주채권은행이긴 하지만 적극적인 요청이 없어 서한을 작성해 보내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진해운이 보유한 선단 중 가장 큰 1만3000TEU급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선 4∼5척에 현대상선이 주목하고 있다”면서 “현대상선은 대형 선박을 인수하길 원하지만 이는 정부와 산업은행의 금융지원에 달렸다”고 보도했다.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선박을 일부 인수할 경우 약 1000억원의 자금이 추가로 필요한데, 이는 산업은행의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WSJ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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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유성열 기자, 김지방 기자 nukuva@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