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회 이야기] 평생 못잊을 ‘장로님의 대성통곡’

입력 2016-09-26 20:27

부산의 한 교회에서 시무하던 때의 일입니다.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교인 두 분이 시장바닥이 떠나가라고 싸움을 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한 분은 장로였고 다른 분은 갓 전입한 협동안수집사였습니다. 어떻게, 왜 싸웠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엄청나게 싸웠기에 담임목사인 제 귀에까지 그 소문이 들렸습니다.

그 날이 마침 토요일이었는데 밤늦게 당사자인 장로님께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내용인 즉 “이미 목사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이러 저러해서 안수집사와 싸웠다. 제가 내일 예배 대표기도 순서자인데 장로로서 너무 부끄럽고 죄송해서 할 수 없을 것 같다. 순서를 다른 분과 교체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게 목회 연륜이 있었더라면 저는 장로님의 요청대로 순서를 바꿔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30대 초반의 이제 막 목회를 시작한, 원칙주의자였던 당시 저에게 장로님의 그 ‘핑계’를 수용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장로님을 설득했습니다.

“우리가 언제 의로워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까. 목사가 의로워서 설교하고 장로가 의로워서 기도 인도를 하겠습니까. 그저 우리는 죄 많은 인간인 채로 십자가만 붙잡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긍휼과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요, 예배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그냥 오십시오. 그리고 그냥 기도 인도하십시오.”

연세 많은 장로님은 여러 번 하소연하다가 할 수 없이 기도를 맡기로 하셨습니다. 주일 아침 예배 시간을 앞두고 예배 준비실에서 초조하게 장로님을 기다렸습니다. 평소에는 예배 30분 전에 나오던 분이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를 딱 1분 앞두고 장로님은 오셨고, 기도 시간까지 고개를 떨군 채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순서가 되어 기도를 인도하러 단상 앞에 나오셔서는 말문이 막혀 2∼3분을 침묵한 채 가만히 계셨습니다. 그러다 장로님은 울음을 터뜨리시면서 “하나님,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라며 대성통곡을 하셨습니다.

그날 저는 평생에 들었던 그 어떤 기도보다 은혜롭고도 감동적인, 그리고 진솔한 기도를 들었습니다. 온 교인들이 함께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날 저는 비로소 예배란 ‘우리 자신을 죽여서 바치는’ 제사임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내 의지와 체면, 욕심을 몽땅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은혜만을 갈망하는 것임을 배운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천국에 계실 장로님의 순수하고도 솔직 담백하셨던 얼굴 모습이 그립습니다.

서정오 목사 <서울 동숭교회>

◇약력=강원대 사범대 국어교육과·장신대신대원 졸업, 문화선교연구원 1·2대 이사장·2008서울기독교영화제 조직위원장·2015 월드비전 홍보대사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