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이 자급되지 않고 종속된 상태에서 선진국으로 간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정명채 한국농어촌복지포럼 상임대표는 우리나라 식량·종자 시장에 대해 크게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세계는 식량·종자 전쟁이 치열한데 우리나라는 변방에 있다”며 “현 상황에서 최근 논란이 된 유전자변형(GMO) 곡물 대량 수입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탄식했다.
우리나라는 GMO농산물 수입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사료용 포함)은 1970년 80.5%에서 80년 56%, 90년 43.1%, 2000년 29.7%, 2010년 27.6%로 대폭 낮아졌고, 지난해엔 23.8%를 기록했다.
이는 수입산과 단가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2015년 양곡연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재배한 식용콩은 ㎏당 3950원이지만 수입 식용콩은 4분 1 정도 저렴한 3010원이다. 사료용 곡물도 마찬가지다. 김태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곡물실장은 “사료용은 원료 비중 가격 원가에 미치는 영향이 높기 때문에 곡물 가격이 중요하다”며 “수입산을 쓸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유럽연합(EU)은 57년부터 공동농업정책을 통해 회원국의 농가 소득지지, 농산물 시장관리, 농촌개발 등을 공동으로 하며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있다. 특히 세계 곡물시장은 ‘ABCD’라 불리는 아처대니얼스미드랜드(ADM), 벙기(Bunge), 카길(Cargill), 루이드레퓌스(LDC)가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 곡물시장에서 저장·보관·운송·무역을 취급하며, 전체 유통망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식량·종자 시장 쟁탈전도 치열하다. 독일 화학·제약업체인 바이엘은 세계 최대 종자회사인 미국 몬산토를 인수했다고 지난 18일 발표했다. 중국 국영 곡물기업인 중량집단유한공사(中糧集團·COFCO)는 지난달 네덜란드 대표 곡물 무역사인 니데라의 지분을 49% 추가로 사들이는 데 합의했다. 지난 2월에는 국영 화학기업인 중국화공(中國化工)이 세계 농약시장 점유율 1위, 종자시장 점유율 3위인 스위스 종자기업 신젠타를 사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종자시장을 해외 기업에 빼앗겨왔다. 99년 국내 종묘업계 1위 흥농종묘와 3위 중앙종묘가 멕시코계 기업 세미니스(현 몬산토)에 팔렸고, 2위 서울종묘는 노바티스(현 중국화공)에 넘어갔다. 2014년 국내 대표 종자기업인 농우바이오(현재 농협 인수)가 몬산토에 인수될 뻔하기도 했다.
정부는 여러 가지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정부 때인 2011년 4월 농수산물유통공사(aT)는 삼성물산, STX, 한진과 함께 미국 시카고에 ‘aT그레인컴퍼니’란 회사를 세워 ‘해외곡물 조달 시스템’ 사업을 하려 했다. 하지만 곡물 유통망을 확보하지 못한 채 2014년 청산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종자산업 육성을 위해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총 예산 4911억원을 투입하는 골든시드 프로젝트도 아직까지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글=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식량 자급 외면한 채 ‘싼 맛’에 GMO 수입만 열올려
입력 2016-09-26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