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28일부터 한국사회는 그간 만연했던 ‘일상화된 청탁 문화’를 척결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에 돌입한다.
김영란법의 효과는 시행 전부터 감지된다. 정계와 관가, 언론과 교육계를 비롯한 공직 관련 업계 전반은 김영란법 ‘예습’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공무원과 언론인들은 식사 약속 등 일상 속에서 김영란법의 ‘3·5·10 가액기준’을 적용하는 ‘연습’에 한창이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대관 업무 담당자들의 법인카드 한도를 낮추고, 임원들의 골프 약속도 제한하는 등 벌써부터 몸을 사리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최저임금이 6000원인데 한 끼 식사로 3만원이 부족하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관련 기사의 댓글이 국민정서의 바로미터로 회자된다.
김영란법 시행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일선 현장에선 법 규정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관행인 부정청탁을 직접 겨냥한 법인 만큼 금지 조항들이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시행 직후 상당 기간 혼란이 빚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처음엔 과태료나 형사처벌 대상으로 간주됐던 행위가 사법부 판단에 의해 뒤집어지는 사례도 여럿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란법이 완전히 정착하기까지 사회 각 분야에서의 진통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헷갈림의 원인은 ‘사회상규’
김영란법을 두고 빚어지는 논란의 상당 부분은 금지 조항들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라는 것이다. 형식논리로만 법 조항을 해석하면 금지로 간주될 행위가 알고 보면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을 수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회상규’ 관련 조항이다. 김영란법은 ‘원활한 직무수행이나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금품 등’은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이 부분이 특히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았으나 헌법재판소가 지난 7월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이 부분도 “모호하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일례로 국공립병원에서의 진료순서 변경 청탁을 들 수 있다. 권익위는 진료 또는 입원 순서를 바꿔 달라는 요구는 부정청탁에 해당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해당 환자가 위독한 경우에는 부정청탁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권익위는 “환자가 위독한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의학적 판단에 따라 접수 순서대로 하지 않더라도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으므로 정상적인 거래관행을 벗어났다고 할 수 없어 부정청탁이 아니다”면서 “위독함 등을 가장해 진료·치료 순서의 변경을 요청하는 건 위반”이라고 밝혔다.
환자 이송을 맡은 구급대원에게 병원 측이 휴식공간 등 편의를 제공하는 경우는 어떨까. ‘직무 관련자’이기 때문에 금지될 것 같지만 사실은 이 역시도 허용된다. 권익위는 “기존 휴식공간을 이용하도록 하거나 간단한 음료 등의 제공은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 등에 해당해 허용된다”고 밝혔다.
전년도 담임교사에 선물도 ‘위험’
반면 교육 분야에서는 금지 행위가 매우 엄격하게 규정되고 있다. 권익위는 학급 또는 교과목 담임교사가 학부모로부터 성적, 수행평가 등과 관련해 선물을 받는 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고 밝혔다. ‘사교·의례 등의 목적을 벗어나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지만 사실상 모든 금품 제공이 금지되는 셈이다.
전년도 담임교사에게 금품을 주는 건 괜찮을 것 같지만 역시 위반 소지가 있다. 권익위는 “작년 담임교사의 경우도 언제나 가액기준 이하의 선물이 허용된다고 할 수 없다”면서 “성적이나 수행평가 등과 관련성이 있다면 학부모로부터 선물을 받는 건 허용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혼란은 불가피”
전문가들은 김영란법의 취지가 사회의 고질적인 부정청탁을 근절하는 것인 만큼 시행 과정에서 잡음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김영란법의 일부 문제점을 지나치게 비판하기보다 법 시행 이후의 긍정적 효과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는 2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영란법에 여전히 모호한 부분이 존재해 이런 부분은 실제 사례가 나왔을 때 논쟁을 다소 유발할 것으로 본다”면서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몇 개의 의미 있는 사례가 누적되면 부작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는 청탁이라 생각하지도 않는 청탁문화가 일상화돼 있다. 이런 일상의 삶을 바꿔가야 한다”면서 “(김영란법에) 불평불만만 하지 말고 희망을 보고 맞춰 살아갈 필요가 있다. 사회 전체가 바뀌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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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조성은 정건희 기자 jse130801@kmib.co.kr, 일러스트=이은지 기자
김영란법, 진료순서 변경 청탁 ‘위법’… 환자 위독할 땐 예외
입력 2016-09-2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