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년 전 남편이 돈을 버는 동안 나는 전적인 육아와 살림을 담당해야 했었다. 때문에 바깥 생활을 거의 못하고 외출이라곤 집과 시댁, 친정이 고작이었고 만나는 이라곤 가족뿐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사바나를 질주하던 치타를 우리에 가둬 놓고, 죽은 토끼나 개들이 먹는 사료가 지급된 기분이었다. 아이가 잠들면, ‘로키 호러 픽처쇼’나 ‘헤드 윅’을 보았고, 시인이자 언더그라운드 예술가 데라야마 슈지의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를 읽었다. 아이가 깨어 있으면 ‘아기단추 아추’를 수십 번 봐야 했고, ‘베이비 아인슈타인’에서 흘러나오는 ‘꽃의 왈츠’나 ‘반짝반짝 작은 별’을 하루 종일 들어야만 했던 시기였다. 나는 더 이상, 일탈도 탈주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헤드 윅의 ‘앵그리 1인치’나 데라야마의 ‘성난 자유로움’이 내 정신을 집과 가족으로부터, 육아와 살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이사가 확정되어 내가 가진 짐 중 공간만 차지하는 골칫덩어리 짐이 무엇일까 꼽으니 역시 책이다. 한번 책장에 꽂아두면 다시 꺼내기 힘든, 세상에서 가장 무용하고 비경제적인 물건들. 정리해야 할 책을 추리기 위해 책장에서 책 제목과 작가 이름, 출판사 따위를 눈으로 훑다보니 책마다, 이 책은 언제 샀는지 왜 샀는지 다 읽은 책인지 아닌지, 읽었다면 뭐가 좋아서 아직 안 버린 것인지… 그런 생각의 편린들이 책 위에 쌓인 먼지가 떨어지듯 내 앞으로 스르륵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데라야마가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에서 말하던 ‘일점호화주의’를 나는 책으로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주쿠 아사히초의 일용직 노무자가 일주일간 매 끼니를 우유 한 병으로 때우고 기차역 벤치에서 잠자며 모은 돈으로 대형극장에서 베를린 오페라를 감상하면서 콩만 먹는 사내의 비극에 감동하고 그와 동시에 극장이라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 변혁을 할 수만 있다면 그 모험은 성공한 것”이라고 하는데. 데라야마 슈지가 말하던 일점호화주의의 변혁과 모험은 많이 힘들어 보인다.
글=유형진(시인), 삽화=전진이 기자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일점호화주의와 나의 책들
입력 2016-09-25 1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