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위원 필리버스터’도 못 막은 여소야대…‘김재수 해임안’ 가결 안팎

입력 2016-09-24 02:00
김재수 장관이 24일 새벽 여의도 농식품부 서울사무소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야당 의원들이 24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투표하기 위해 줄 서 있다. 오른쪽 사진은 정세균 국회의장의 해임안 상정 강행에 반발해 본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있는 새누리당 의원들 모습. 뉴시스
정세균 국회의장은 거침이 없었다. 23일 오후 11시 57분 대정부질문 도중 예고한대로 본회의 차수 변경을 선언했다. 24일 0시가 되자 “국무위원 출석 의무는 어제부로 종료됐다. 더 이상 대정부질문을 할 수 없으니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단체로 의장석 앞 단상으로 나가 “날치기 의장 독재자 정세균은 물러가라”를 외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정 의장은 0시 18분 제9차 본회의를 열어 첫 번째 안건으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상정했다. 야당만 참여한 표결 결과 김 장관 해임건의안은 재적 170명 중 찬성 160명으로 가결됐다. 심야까지 이어진 여야 대치는 일단 이렇게 막을 내렸다.

해임건의안 처리의 키를 쥔 건 국민의당이었다. 국민의당은 해임건의안을 공동 제출하기로 한 야3당의 합의를 깨면서 판을 흔들었다. 이후 새누리당은 국민의당을 치켜세우면서 표결 불참을 종용했고, 더민주는 찬성 투표를 압박했다.

오후 들어 국민의당 내부에서 해임건의안을 가결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기 시작했다. 청와대와 여당의 적반하장식 태도가 달라진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 의장은 오후 4시쯤 3당 원내대표를 불러 중재를 시도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때부터 해임건의안 표결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일찌감치 표결 불참 방침을 세웠던 새누리당은 ‘국무위원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카드를 들고 나왔다. 질문은 짧게, 정부 측 답변은 최대한 길게 듣는 식으로 시간을 끌었다. 국회법상 질문 시간은 20분으로 제한돼 있지만 답변시간엔 제한이 없는 점을 이용한 ‘꼼수’였다. 새누리당은 한때 필리버스터를 통해 해임건의안을 자동 폐기시키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본회의 개의 전 신청해야 한다는 요건을 맞추지 못해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의장이 오후 7시를 넘어서까지 정회 없이 대정부질문을 이어가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단상 앞으로 나가 “(국무위원들) 김밥 먹을 시간은 줘야지,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의회 독재입니다!”라고 고함을 쳤다. 정 의장은 “회의가 이렇게 늦어진 게 누구 때문인지 잘 따져보라”고 맞받았다. 새누리당 의원총회가 길어지면서 당초 오전 10시로 예정됐던 본회의가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열리게 된 점을 꼬집은 것이다. 야당 석에선 “필리밥스터 하느냐”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새누리당의 본회의 지연 작전은 마지막 질문자로 나선 이우현 의원 차례 때 극에 달했다. 이 의원은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을 처음부터 설명해달라고 요청하는가 하면 이준식 교육부총리에게는 자율학기제 취지를 물었다. 이 의원은 앞서 기자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 다 물어보겠다. 새벽 2시까지 하겠다”고 예고했었다. 정 의장은 이 의원이 대정부질문을 하는 중 기습적으로 차수 변경을 한 것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가 그 짓(필리버스터) 하다가 야당이 되었건만 총리·장관의 필리버스터는 안 했다”며 “차수 변경도 각오하고 있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이 야권 단결을 부추긴 셈이다.

당분간 정국은 얼어붙게 됐다. 여야는 물론 입법부 수장인 정 의장과 청와대간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정 의장과 더민주는 헌정사에 유례없는 비열한 국회법 위반 날치기에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협치는 끝났다”고 말했다.

권지혜 고승혁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