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안 막으려 ‘국무위원 필리버스터’

입력 2016-09-23 17:57 수정 2016-09-23 21:27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3일 저녁 국회 대정부 질문 도중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황교안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의 식사시간을 이유로 정회를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를 놓고 여야 3당은 23일 밤늦게까지 대치했다. 새누리당은 해임건의안 제출에 동참하지 않았던 국민의당이 찬성투표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자 유례없는 ‘국무위원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들고 나와 야당을 자극했다.

일찌감치 표결 불참 방침을 정한 새누리당은 오전 9시부터 마라톤 의원총회를 이어갔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야당은 주머니 속 공깃돌처럼 장관 해임건의안을 갖고 정치 흥정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현 대표는 국민의당을 향해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저서 ‘용기 있는 사람들’을 다시 쓴다면 국민의당에 대해 한 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될 만큼 용단”이라고 한껏 치켜세웠다. 표결 불참을 유도하기 위한 노골적인 구애였다. 새누리당 의총이 길어지면서 오전 10시로 예정됐던 본회의는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시작됐다.

오후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표결 참여를 두고 내내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던 국민의당 내부에서 해임건의안을 가결시키자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더민주 121명, 정의당 6명, 친야 성향 무소속 5명이 전부 찬성표를 던져도 해임건의안 가결 요건엔 19표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분명한 건 우리 당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박 위원장은 전날 정 원내대표,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과 접촉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의회정치에서 정부와 여당은 실리를 택하고 야당은 명분을 갖는 것인데, 두 분과의 대화 결과는 ‘박근혜 대통령이 명분도 실리도 다 갖고 야당은 따라오라는 것’이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더민주가 “국민의당이 표결에 불참하는 건 여소야대 총선 민심을 부정하는 것이고, 야권 공조를 뿌리부터 흔드는 것이며, 새누리당 2중대임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여론전을 편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본회의 도중 3당 원내대표를 불러 중재를 시도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때부터 해임건의안 표결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러자 이번엔 새누리당이 노골적으로 본회의를 지연시켰다. 정우택 의원은 모두발언과 질문은 짧게, 황교안 국무총리의 답변은 길게 허용하는 식으로 50분을 끌었다. 같은 당 임이자 의원도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노동개혁과 관련한 기초적인 질문을 던졌고 이 장관은 원론적인 내용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국회법상 질문자의 발언 시간은 20분으로 제한돼 있지만 국무위원의 답변시간엔 제한이 없는 점을 이용한 ‘꼼수’였다. 새누리당은 한때 필리버스터를 통해 해임건의안을 자동 폐기시키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본회의 개의 전에 신청해야 한다는 요건을 맞추지 못해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더민주 이재정 대변인은 긴급브리핑에서 “새누리당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가 정부 측에 답변 늘리기를 요청했고 이런 장면이 더민주 의원 및 관계자에 의해 목격됐다”고 주장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페이스북에 “우리가 그 짓(필리버스터) 하다가 야당이 되었건만 총리·장관의 필리버스터는 안 했다”며 “차수 변경도 각오하고 있다”고 썼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오후 8시쯤 갑자기 국회의장석 앞으로 가 “국무위원들에게 김밥 먹을 시간은 줘야 되지 않겠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정 의장이 대정부 질문을 계속 이어가려고 하자 정 원내대표는 “의회 독재”라고 소리를 질렀고, 정 의장은 “의사진행을 방해하면 안 된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고성과 야유가 난무하면서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권지혜 이종선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