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0만원입니다.”
일일이 가격을 묻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지난 2일 직장인 이모(32)씨는 대형 프랜차이즈 미용실에서 펌 시술을 받았다. 시술을 전부 마친 뒤에야 직원이 부른 금액은 전화로 알아봤을 때보다 10만원이나 더 비쌌다. 이씨가 항의하자 미용사는 “머릿결의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가격대가 더 높은 시술을 이용했고 약품이 추가적으로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이씨에게 “해당 시술을 진행하면서 머릿결 손상 보호를 위한 약품을 쓸 것이라 말하지 않았느냐”라고 되물었다. 이씨는 23일 “어쩔 수 없이 요금을 다 내긴 했지만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30일 ‘미용실 바가지요금’을 근절하기 위해 전국 시·도·군·구에 ‘미용업소 최종가격 게시 및 미용서비스 전 최종지불요금표 제시 지침’을 내려 보냈다. 미용 시술을 하기 전에 업주는 손님에게 ‘사전계산서’를 발행해야 한다는 게 주요 내용으로, 7월 15일부터 정식으로 시행됐다. 지침은 지난 5월 충북에서 발생한 ‘장애인 염색비 52만원’ 사건 때문에 서둘러 마련된 보완대책이었다. 당시 한 미용실 주인이 뇌병변을 앓고 있는 장애인을 상대로 “특수 시술을 했다”며 염색 시술 비용으로 52여만원을 뜯어내 사회적 공분을 샀다.
복지부가 마련한 지침에 따르면 업주는 음식점 주문서처럼 고객이 묻지 않아도 머리길이에 따른 추가비용, 약품이나 시술 추가 등을 구체적으로 적은 ‘상세주문내역’을 적어 미리 알려줘야 한다. 주문내역 양식은 업소마다 자체적으로 마련토록 했다.
시행 두 달이 지났지만, 지침은 미용실 현장에서 무용지물이다. 서울 시내 미용실 10곳을 확인한 결과 지침을 시행 중인 곳은 대형 프랜차이즈 미용업체 3곳뿐이었다. 4곳은 지침을 알고 있었지만 시행하지 않았고, 3곳은 지침을 모른다고 했다.
현재 지침은 강제할 근거가 없는 권고사항에 불과하다. 복지부 관계자는 “미용사와 고객은 사인(私人) 간 계약으로 이루어진 관계이고 영업방식은 업주의 자유라 이를 의무제로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사회적인 문제가 다시 불거진다면 다른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업계도 상세주문내역 작성을 ‘지나친 간섭’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대한미용사중앙회 관계자는 “개인의 모발 상태나 두피 등 미용 시술에는 변수가 많은 미용업 특성상 음식점처럼 고정 가격을 제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수년간 친분을 쌓아온 단골들을 주로 상대하는 골목상권의 작은 미용실들은 이러한 상세주문내역을 불필요한 규제로 여기는 분위기다.
미용실 이용 소비자들의 요금 불만의 역사는 깊다. 복지부는 2007년 공중위생관리법을 일부 개정해 이·미용업소 내 요금 게시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업소에 따라 봉사료·부가가치세 등이 빠진 경우가 있어 2013년에는 최종 지불 요금을 게시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면적 66㎡ 이상 업소에 대해서는 옥외가격표시 의무제도 시행했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이·미용업소 피해구제접수는 2012년 292건, 2013년 246건, 2014년 318건, 2015년 338건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법무법인 가율의 양지열 변호사는 “미용시술은 공산품처럼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침을 일괄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도 “지침이 ‘바가지요금’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지만 추후 분쟁이 발생했을 때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미용실서 ‘바가지’ 써 보셨죠? ‘사전계산서’ 지침 유명무실… 소비자들 부글부글
입력 2016-09-24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