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밍 법안’ 어떻게… 네 가지 작명법 ‘사회’를 담다

입력 2016-09-24 04:02

사람 이름이 붙은 법안이라 해서 다 같지는 않다. 어떤 법안은 법안 마련을 촉발한 피해자나 유명 인사의 이름으로 불리거나 처벌 대상자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 어떤 법안은 법안을 주도적으로 마련한 사람의 이름을 따 언급되기도 한다.

①법안 주도한 사람을 딴 법안

최근 이슈가 된 김영란법은 정식 명칭 대신 법안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사람의 이름을 땄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일명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개정 정치자금법이다. 16대 국회 막바지에 정치개혁특위 간사를 맡았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004년 주도해 만든 이 법은 정치자금 후원 대상을 국회의원과 당내 경선 후보자 등으로 제한하고 정당 후원 제도를 폐지했다. 국회의원 정치자금 모금 한도도 연 1억5000만원으로 제한했다. 초기 많은 저항이 있었지만 정경유착의 사슬을 끊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지난해 말 헌법재판소는 이 법에서 규정한 정당 후원 금지에 대해 “정당의 정치자금 모금은 활동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전제이며, 일부 부패한 정치세력 때문에 이를 원천 봉쇄할 필요는 없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내년 대선부터는 다시 정당 후원이 가능해진다.

②피해자 이름을 딴 법안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 사건과 관련된 경우 사건과 관련된 사람의 이름을 딴 법안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영이법’이다. 이 법은 관련 언급 때마다 피해자 가족의 고통을 가중시킨다는 근거로 이후 가해자의 이름을 딴 ‘조두순법’으로 별명이 바뀌었다.

2008년 경기도 안산에서 성범죄 전과 14범 조두순이 등굣길이던 초등학생 나영이(가명·당시 8세)를 성폭행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성폭행 후유증으로 피해자는 탈장 등 심각한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 처지가 됐지만 법원은 당시 가해자 조씨가 만취에 따른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검찰이 구형한 무기징역 대신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판결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일자 성범죄에 한해 심신미약에 따른 감형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했다.

지난 5월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신해철법’도 마찬가지 케이스다. 이 법의 정식 명칭은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일부 개정안’이다. 2014년 10월 가수 신해철씨가 서울 송파구의 한 병원에서 위장 수술을 받은 지 5일 후 심정지 상태로 쓰러진 뒤 끝내 사망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신씨의 유가족이 병원 측에 의료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의료사고 분쟁조정 신청을 했으나 해당 병원이 조정 절차를 거부하면서 논란이 됐고, 관련법의 허술함을 보완하기 위해 개정했다.

친권자동부활 금지제를 의미하는 ‘최진실법’의 경우도 비슷한 예다. 최씨가 2008년 사망한 뒤 최씨의 두 자녀 친권이 자동적으로 아버지 조성민(2013년 사망)씨에게 넘어가자 최씨 이혼 후 남매를 5년 가까이 키워온 외할머니에게도 친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부모가 이혼한 상태에서 친권자였던 한쪽이 사망할 경우 다른 한쪽이 자동으로 미성년자 자녀에 대한 친권을 얻는 것을 방지하고 가정법원의 심사를 통해 친권자를 결정하는 내용이다.

이에 앞서 최씨의 자살에 ‘악플’(악성 댓글)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여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하고 관련법을 ‘최진실법’으로 명명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그러나 유족 측의 중지 요청에 따라 해당 명칭은 사용중지됐으며 법안 제정도 표현의 자유 논란에 부닥쳐 무산됐다. 2012년 새누리당이 추진했던 ‘나경원법(공직 선거법 개정안)’도 비슷한 케이스로 볼 수 있다.

③처벌 대상자 이름 딴 법안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 관련 법안 중에는 처벌 대상자의 이름을 차용한 별칭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병언법’과 ‘전두환 특별법’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후 참사 원인 이면에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2014년 사망) 일가의 횡령, 배임 및 조세포탈 등이 세상에 드러났다. 당시 김재원 의원 등은 조세 체납자뿐 아니라 배우자와 자녀의 재산까지 추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범죄수익은닉규제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이 법안은 ‘유병언법’으로 불렸다. 이 법은 세월호 참사 205일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집권 당시 뇌물수수 등의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1997년 대법원에서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2013년 10월 추징금 집행시효 만료를 앞두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24% 수준인 533억원만 환수했다. 민주당 최재성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두환 특별법(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일부개정안)’은 전 전 대통령의 추징 시효를 2020년까지 연장하는 것은 물론 아들 재용씨 등 그 일가에 대해서도 추징을 가능토록 했다.

이후 재용씨가 38억여원의 벌금을 내지 못하겠다며 노역을 선택하면서 일당 400만원짜리 ‘황제 노역’ 논란에 휩싸이자 더불어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노역장 최장 유치기간을 3년에서 6년으로 늘리는 형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하고 이를 ‘전재용 방지법’이라고 명명했다.

2013년 남양유업 본사 직원의 대리점주에 대한 갑질 논란 이후 마련된 ‘남양유업방지법(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도 이와 비슷한 사례로 분류된다. 전두환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18조원이나 되는 분식회계 등에 관한 추징금 가운데 1%도 내지 않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겨냥한 법안도 발의됐으나(일명 ‘김우중 특별법’) 국회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④그 외 핫이슈 관련법

범죄 피해자나 처벌 대상이 아니더라도 ‘핫이슈’가 된 인물이 법안의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정치권에서 한때 논란이 됐던 ‘안대희 방지법’을 비롯해 2014년 배우 김부선씨의 폭로로 불거진 아파트 관리비 회계 비리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김부선법’도 이러한 케이스다. 김씨의 폭로 이후 300가구 이상 공동주택은 매년 1회 이상 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주택법 개정안에 추가됐다. 이 사건으로 김씨는 졸지에 ‘난방열사’란 별명을 얻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타로 떠올랐다.

글=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