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모리스코리아(필립모리스)와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코리아(BAT) 등 2개 외국계 담배 회사들이 2015년 1월 정부가 담뱃값을 올리기 전 대량의 재고를 조성해 가격이 오른 뒤 판매하는 수법으로 2083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올 5월부터 6월까지 기획재정부 등을 대상으로 ‘담뱃세 등 인상 관련 재고차익 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를 벌인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2일 밝혔다. 적발된 담배 제조사와 유통사들은 담뱃세 인상에 앞서 담배를 출하하고 인상 이후 판매하면서 얻은 세금 차액인 재고차익을 실현해 국가 세수로 귀속돼야 할 세금을 중간에서 가로챘다. 2500원에서 4500원으로 가격이 인상된 담배를 기준으로 갑당 제조업체가 내는 세금 인상 전후 차액은 1591.9원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해당 외국계 담배회사들은 2014년 9월 12일 담뱃세 인상 발표에 따른 ‘매점매석 고시’ 시행을 앞두고 재고량을 급격히 늘렸다. 고시 시행 기간인 2014년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 동안 월별 반출량이 앞선 8개월 평균 반출량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강제되기 때문에 시행 시점 이전 재고를 확보해 폭리를 취하려 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말보로’ 담배를 생산하는 필립모리스는 2014년 말 쌓아둔 재고가 1억623만여갑에 달했다. 이는 전년 동기 재고량인 445만여갑 대비 24배 수준이다. ‘던힐’ 담배 생산 업체인 BAT 역시 2013년 말에는 재고가 하나도 없었지만 2014년 말 2463만여갑의 재고를 확보했다. 필립모리스와 BAT는 이를 지난해 상반기 인상된 가격으로 판매해 각각 1691억원, 392억원을 탈루했다.
이들은 생산공장과 보관창고를 포괄하는 개념인 ‘제조장’에서 담배를 반출한 것처럼 관련 서류와 전산망 등을 조작, 인상 전 세금만을 납부했다. 담뱃세는 ‘판매 시점’이 아니라 제조장에서 물류창고 등에 ‘반출된 시점’을 기준으로 세금이 확정되는 점을 악용했다.
필립모리스는 제조장 인근 창고를 단기 임차해 5055만갑을 쌓아둔 데 더해 반출행위 없이 전산상 허위 입력만으로 5568만갑을 추가로 정상 반출한 것처럼 꾸몄다. BAT는 제조장 내 물류창고 일부 구역을 특수관계인 업체에 임대해준 뒤 전산상으로는 반출한 것처럼 처리하는 수법을 썼다.
기재부와 행정자치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유관 부처도 담뱃세 인상에 맞춰 예상되는 담배회사들의 차익 환수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기준 담배 재고분 5억갑에서 발생한 인상 차익 7938억원이 고스란히 담배 제조사와 유통사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감사원 관계자는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재고차익에 대한 환수 기준이 있다”며 “정부가 국고 귀속을 위한 법적 장치를 만들지 못한 부분에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담뱃세를 탈루한 필립모리스와 BAT에 대해 각각 680억원, 158억원의 가산세를 부과하고 탈루된 세금을 징수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국세청 등에 통보했다. 기재부와 행자부 등에는 두 회사를 관련 규정에 따라 고발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글=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지난해 담뱃값 인상 틈타 외국업체 ‘재고 차익’… 2083억 탈루
입력 2016-09-2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