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런 식으론 미르·K재단 의혹에서 못 벗어난다

입력 2016-09-22 18:34
그동안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에 침묵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박 대통령은 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두 재단 설립 과정에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당시 경제수석)과 고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씨가 주도적으로 개입했다는 야당의 주장을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으로 일축한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수석비서관회의 발언과 거듭된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확산일로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재단 설립자금 마련을 위해 기업체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안 수석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던 정황이 새로 드러났다. 모든 내사가 범죄 혐의 입증을 위한 수사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 하더라도 석연치 않은 뭔가가 있어서 내사에 들어간 게 아닌가 싶다.

두 재단은 창립총회 회의록을 조작하고, 신청 하루 만에 정부로부터 재단설립 인가를 받는가 하면 삼성 현대차 LG SK 등 내로라하는 재벌들로부터 단기간에 800억원 가까운 거금을 모금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안 되는 그 어려운 일을 척척 해냈다. 누구보다 잇속에 밝은 기업들이 실체도, 하는 일도 불분명한 두 재단에 그 많은 돈을 선뜻 갹출한 속사정이 궁금하다. ‘기업 모금은 전경련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재계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이 있을까.

의혹이 제기된 이상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이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전두환정권 시절의 일해재단과 유사한 ‘권력형 비리’로 규정한 마당이다. 야당의 주장을 무책임한 정치공세로 일축하기엔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이 너무 구체적이고, 엄중하다. 이럴수록 정치권이 의혹 해소에 앞장서야 한다. 국정조사든, 국정감사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최씨 등 재단 관련 인물의 국감 증인 채택에 반대하고 있다. 청와대 해명대로 사실이 아니라면 증인 채택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의 결백을 입증하고, 야권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말이다.

새로운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앵무새처럼 ‘일고의 가치도 없다’, ‘논평할 가치를 못 느낀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청와대는 무책임하다. 의혹을 풀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찾아볼 수 없다. 무시 전략으로 모든 의혹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과는 별도로 검찰 수사도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특검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