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지는 게 뭐야?… 전북, 무패 우승 꿈

입력 2016-09-23 00:01
K리그 클래식 2016 시즌 전북 현대의 무패 행진을 이끌고 있는 베테랑 골잡이 이동국이 지난 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울산 현대와의 27라운드 경기에서 후반 45분 선제골을 터뜨린 뒤 기뻐하고 있다. 전북 제공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날은 2003-2004 시즌 새 역사를 썼다. 26승12무(승점 90)로 프리미어리그 사상 첫 무패 우승을 거둔 것이다. K리그에서는 전북 현대가 이번 시즌 사상 첫 무패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전북은 지난 21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2016 K리그 클래식 31라운드 경기에서 2대 2로 비겼다. 시즌 성적은 17승14무(승점 65)가 됐다. 12년 전의 아스날과 현재의 전북을 비교해 보면 많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아스날의 특급 골잡이 티에리 앙리와 플레이 메이커 로베르 피레, 수비형 미드필더 패트릭 비에이라로 구성된 ‘프랑스 3인방’은 무패 우승의 주역이었다. 전북에서는 ‘라이언 킹’ 이동국과 ‘만능 엔진’ 이재성, ‘살림꾼’ 레오나르도가 무패 행진을 이끌고 있다. 현재 이동국은 9골, 이재성은 8도움(2골), 레오나르도는 12골(2도움)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아스날과 전북은 공격 축구를 신봉하는 팀이다. 한 골을 먹으면 두 골을 넣겠다는 생각으로 뛴다. 두 팀이 처음부터 공격적인 축구를 한 것은 아니다. 1996년 10월 아르센 벵거 감독이 부임하기 전 아스날은 지루한 경기를 하는 팀으로 악명이 높았다. AS 낭시 로렌(프랑스), AS 모나코(모나코), 나고야 그램퍼스(일본)를 이끌었던 벵거 감독은 기술 축구를 아스날에 이식했다. 아스날은 빠른 템포에 예술적인 패싱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축구’로 팬들을 매료시켰다. 이런 기술 축구로 프리미어리그에서 꾸준히 4위권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강희 감독이 부임했던 2005년 당시 전북은 우승 경쟁에 뜻이 없는 팀이었다. 중상위권만 유지해도 만족했다. 최 감독은 전북의 체질을 개선해 그해 FA컵에서 우승했고, 다음해엔 말도 안 되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해 버렸다. 전북의 트레이드마크는 ‘닥공(닥치고 공격)’이다. 최 감독은 2011 시즌 개막을 앞두고 “올해 전북은 공격 축구를 하겠다. 닥치고 공격이다”고 선언했다. 그 시즌 전북은 32경기에서 71골을 넣으며 경기당 2.22골에 육박하는 놀라운 공격력을 펼쳐 보였다. ‘닥공’을 장착한 전북은 매 시즌 우승 후보로 꼽힌다.

벵거 감독과 최강희 감독은 둘 다 무명 선수 출신이다. 1949년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도시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난 벵거 감독은 1978년부터 1981까지 스트라스부르(프랑스)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성공적인 선수 시절을 보내지 못했기 때문에 늘 좌절감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그는 지도자로 성공하기 위해 외국어를 배우고 오프 시즌을 이용해 여행을 다니는 등 미래를 준비했다.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도 땄다. 2005년 전북 지휘봉을 잡은 최 감독도 선수 시절 무명으로 지내다가 29세에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최감독 역시 잉글랜드 뉴캐슬, 독일 레버쿠젠,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공부한 학구파다.

벵거는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을 발굴해 스타로 키워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앙리를 비롯해 세스크 파브레가스, 로빈 판 페르시, 아마뉴엘 아데바요르, 니콜라 아넬카 등 많은 선수들이 그의 손을 거쳐 재능을 활짝 꽃피웠다. 그는 “다른 팀들은 슈퍼스타를 사지만 아스날은 슈퍼스타를 만들어 낸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최 감독은 어린 선수를 발굴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기량이 떨어진 선수를 데려와 재기시키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재활 공장장’이다. 이동국을 비롯해 최태욱, 김상식, 조재진, 루이스 등은 최 감독의 지도를 받아 재기에 성공했다.

전북은 지난 5월 스카우터의 심판 매수 파문으로 위기를 맞았다. 자칫 부진의 늪으로 빠질 수도 있었다. 최 감독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며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를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흔들리던 전북 선수들은 최 감독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위기를 극복했다.

최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감독과 선수들은 모두 계약자다. 자기 할 일만 하면 되는 구조다. 재미있는 사실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그 계약관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 같은 관계가 돼야 한다.” 전북은 정규 라운드 2경기와 스플릿 라운드 5경기를 남겨 놓고 있다. 만약 전북이 남은 7경기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고 우승한다면 그 원동력은 감독과 선수들 간의 신뢰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