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채수일] 빌라도와 예수

입력 2016-09-22 18:31

‘서유럽의 멸망’을 쓴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 1880∼1936)는 “예수가 빌라도 앞으로 끌려나갔을 때 그곳에서는 사실의 세계와 진리의 세계가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직접 맞서 있었다. 경악스러울 정도로 선명하고 압도적인 상징성을 가진 이 장면은 세계사를 통틀어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보이는 로마 제국의 권력을 대변하는 빌라도와 보이지 않는 나라의 왕인 예수가 맞선 것입니다. ‘사실의 세계’가 ‘진리의 세계’를 재판하고, 지상의 왕국이 영원한 왕국에게 판결을 내린 것이지요.

엄밀한 의미에서 빌라도의 재판은 재판이 아닙니다. 절차도 지켜지지 않았고, 고발 내용의 사실 여부도 검증되지 않았고, 피고인의 변론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형을 당한 것이 아니라 유대 지도자들의 거짓 고발과 매수되고 선동된 대중, 로마 총독 빌라도의 교활한 정치적 판단이 결탁한 사법 살인을 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과 선동된 대중, 총독 빌라도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도 진리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기득권의 안정과 현상유지를 위한 희생제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권력, 더군다나 생사여탈권을 가진 권력자에게 힘없는 사람이 흔히 취할 수 있는 선택인 굴종, 타협, 저항, 경멸, 혹은 연민의 정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권력의 현실을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권력의 현실을 누구보다 냉정하게 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온갖 영화를 차려입은 솔로몬도 들의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했다고 생각하신 예수님,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길은 ‘사실의 세계’가 아니라 ‘진리의 세계’에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세상 권력의 실체를 충분히 현실적으로 인식한, 그러나 세상 권력도 하나님의 권능 아래 있다는 믿음, 사실의 세계가 진리의 세계를 재판하는 것 같아도 마지막에는 진리의 세계가 사실의 세계를 심판한다는 믿음을 가진 분만이 취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세상 권력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법의 이름으로 취해진 사법살인의 역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새로운 것도 아니고,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도 이런 사법살인의 희생자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키셨고, 마침내 진리의 세계가 사실의 세계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억울하게 죽임당한 모든 희생자들의 소망이 되신 것입니다.

최근 밝혀지는 일련의 검찰과 사법부의 비리와 부패 사태는 사법정의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정의를 제도적으로 지키고 시행해야 할 검찰과 사법부가 돈에 의해 흔들리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냐고, 그래서 오래전부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는 것이라고. 또 그런 사람들은 재수가 없어서 걸렸지, 다른 검사나 판사도 뭐 크게 다를 것 있겠느냐며, 공권력이 싸잡아 불신을 받고 매도되는 사태는 밖으로부터의 위협보다 더 심각하게 우리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합니다.

비리와 부패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없는 한 이런 사태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공권력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수사해야 합니다. 사실의 세계가 조작되고 은폐되면 진리의 세계가 사실의 세계를 심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채수일 경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