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은 한국인이 한국어로 한국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문학’이라는 고전적인 정의를 폐기해야할 때가 온 것이 아닌가?”
문학평론가 정과리 연세대 교수가 새 연구서 ‘뫼비우스의 분면을 떠도는 한국문학을 위한 안내서’(문학과지성사)를 냈다. 20여년에 걸쳐 쓴 원고를 묶었는데, 1979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래 ‘존재의 변증법’이라는 주제아래 써온 비평활동의 맥을 잇는 책이다.
그는 책머리에서 “현미가 제 껍질 근처에 독을 깔아놓듯, 내 진땀들의 일부도 내 글을 먹을 이를 찌르려는 침으로 변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문단에 ‘쓴 소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디지털 문명의 시대를 맞아 지구상의 생명과 제도는 안과 밖이 유통하는 무한한 세계를 맞았다. 그는 이를 ‘뫼비우스 띠’ 국면이라고 부르며 한국문학이 처한 위치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
책은 1부에서는 정보화 사회의 도래 이후 20여년 동안 벌어진 변화를 탐구한다. 과거 계간지가 하던 역할을 이제 SNS가 대신하는 시대에 문학은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2부에서는 한국의 소설과 시가 외부적인 요소에 따라 어떤 변화를 겪어왔는지 주목한다. 특히 ‘세계문학과 번역의 맥락 속에서 살펴본 한국문학의 오늘’이라는 글에서는 논쟁 소지가 있는 과감한 주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 교수는 국민 전체의 문맹률을 놀라울 정도로 낮춘 ‘한국어의 내구성’은 한국문학의 튼튼한 버팀목이자 혈액으로서 기능했지만, 문화의 융합이라는 세계적 판을 일궈야 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밝힌다. 1990년대 이후 소설가 최윤과 번역가 파트릭 모뤼스를 비롯한 몇몇 이들이 번역에 앞장서 황석영의 ‘손님’, 이승우의 ‘생의 이면’ 등이 해외에서 환대받는 성과를 거뒀지만 2006년 이후 그 호기심은 급격히 식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언어적 장벽이 문제다.
번역이 다시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그는 상업주의 논리에 따른 번역의 편식 문제를 제기한다. 최인훈의 작품이 번역되지 못하는 현실을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하기고 했다. 정 교수의 진단은 국내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했던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가 영국의 맨부커상을 받으며 주목받는 현실에 비춰볼 때 무엇을 번역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25년 생각의 진땀이 만든 작은 밤톨”
입력 2016-09-22 1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