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미래포럼] ICT와 융합… 금융 ‘와해적 혁신’이 오고 있다

입력 2016-09-21 18:28 수정 2016-09-21 21:19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 12층에서 21일 열린 국민미래포럼에서 제2세션 참석자들이 금융산업과 정보통신기술의 융·복합 현황과 과제를 토론하고 있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미래금융연구센터장, 오세경 건국대 교수, 강순희 경기대 교수, 양신형 쿼터백자산운용 대표, 최성일 금융감독원 IT·금융정보보호단장(왼쪽부터). 윤성호 기자
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이 활성화되려면 진입장벽을 낮춰 서로 다른 성격의 서비스들이 결합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빅데이터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전통적 금융서비스를 송두리째 바꾸는 변화에 발맞춰 감독 당국이 유연한 규제체계를 만들고 개인정보 보안 등 소비자 보호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개방형 플랫폼 경제

최공필 금융연구원 미래금융연구센터장은 2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열린 국민미래포럼에서 “소수가 독점적으로 제공하던 금융서비스에 ‘와해적 혁신’이 일어나면서 금융산업의 장기적 구조와 비즈니스 모델, 소비자 행동이 지속적으로 혁신되고 있다”며 “예를 들어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갖고 있는 건강관리 데이터가 보험에 적용될 경우 보험료가 저렴해지는 것처럼 서비스의 생산·전달·판매가 한 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센터장은 이런 와해적 혁신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서비스 단계·영역별 진입장벽을 넘어서는 ‘플랫폼 경제’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활용한 지급결제, 은행 창구에 가지 않고도 비대면 방식의 실명인증이 가능한 시스템,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의 구매패턴이나 투자성향을 분석한 후 이를 금융서비스에 활용하는 맞춤형 서비스는 통합 플랫폼 없이는 작동하기 어렵다. 그는 “소비자 중심의 편의성과 경제성을 증진시키려면 금융서비스의 플랫폼이 개방형 구조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최성일 금융감독원 IT·금융정보보호단장은 “4차 산업혁명 환경에서 플랫폼 사업으로 발전하려면 기존에 개발돼 사용되는 시스템 이익을 금융사들이 독점하며 단기 이익을 누리기보다는 규제 진입장벽을 낮추면서 핀테크 업체와 윈-윈(win-win)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금융서비스의 본질적 변화

향후 금융산업에서 벌어질 변화는 어떤 모습일까. 스마트폰을 통한 모바일 지급결제로 ‘화폐 없는 세상’이 현실화하고, 모바일 머니 등 새로운 결제시스템이 자리 잡을 전망이다. 보험 분야에서는 공유경제나 자율주행차량 등 새로운 형태와 결합된 보험이 등장하고, 다양한 스마트 센서를 활용해 개인별 위험 예측능력이 높아지는 점을 감안해 보험이 더욱 세분화된다. 투자관리 분야에서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로봇이 투자상품을 자문·운용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가 도입되면서 투자자의 선택 폭이 넓어지고 맞춤형 자산관리가 가능하다.

토론자로 나선 양신형 쿼터백자산운용 대표는 “데이터가 조 단위로 급격하게 늘어나는 환경에서 로보어드바이저는 인간의 처리능력보다 고급정보 생산능력이 뛰어나다는 게 강점”이라며 “자산운용에서도 소비자가 지불하는 운용·판매보수를 로보어드바이저로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약 130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시장은 로보어드바이저의 주요 타깃”이라며 “체계적인 자산배분을 제공하는 로보어드바이저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금 및 대출 분야에서는 P2P 대출(대출형 크라우드펀딩) 등 대안적 대출형태가 확산하고, 모바일은행이 발달하면서 핀테크 기업과 협업하는 능력이 금융사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시장서비스 분야에서도 심층 기계학습을 통한 빅데이터를 토대로 채권·헤지펀드·사모펀드 등 새로운 정보 플랫폼이 변화를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자금 펀딩 분야에서는 초기 자금조달에 필요한 시간이 단축되고, 크라우드펀딩이 대안적 선택으로 활용될 수 있다.

향후 과제는

융복합으로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보안에는 위험이 따른다. 최 센터장은 “편의성을 중시하고 채널·서비스·기술 간 융복합이 일어나는 환경에서는 보안성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질 수 있다”며 “사이버 공격 발생 확률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과도하게 개인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도록 하고, 빅데이터 관리에서도 세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 센터장은 또 “정부가 가시적 변화를 주도하기보다 데이터 활용 관련 법·제도 정비나 개인정보 보호 강화 등 거대 개방 생태계를 조성하는 역할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단장도 “한국은 전자금융 사고율은 낮은 편이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금융사가 적극적으로 소비자 피해 보상에 나서지 않고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며 “금융사들이 실질적인 자율보안체계를 통해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순희 경기대 직업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이 기술 중심적 발전을 매개로 상당수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과 관련해 대응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일자리 변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한국의 전체 일자리 중 55∼57%가 컴퓨터로 대체될 확률이 높은 고위험군에 속한다고 본다”며 “영업과 판매 직종의 비중이 유난히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종합토론에서 김진형 지능정보기술연구원장은 “이제는 ICT를 모르고 금융을 하는 것은 영어를 모르고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한국의 금융산업은 카르텔을 만들어 통신 보안이 뚫려도 책임을 지지 않을 정도로 경쟁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처럼 갖가지 규제로 장벽을 만들어 놓고도 먹고살 수 있으면 모르겠지만 이런 상태로 가면 한국인들도 중국의 알리페이를 쓰든지 외국계 은행을 이용하지 굳이 삼성페이나 우리은행을 찾겠나”라고 질타했다.

2세션 사회를 맡은 오세경 건국대 교수도 “규제산업인 금융산업에는 지진과 같은 혁신적인 흔들림이 일어나지 않으면 융복합이 이뤄지기 어렵다”며 “회계감사를 위해 종이영수증을 일일이 풀칠해서 붙이는 것도 법인카드 결제내역으로 대체하는 식으로 규제도 스마트하게 발전시키는 규제기술(RegTech)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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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지방 백상진 기자 fattykim@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