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자녀를 둔 김미정(가명·42)씨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자유학기제 기간 중 아이로부터 납득하기 힘든 얘기를 들었다. 김씨는 “아이가 원하는 직업체험을 하지 못해 울상이었는데, 알고 보니 해당 체험처를 가고 싶은 아이들끼리 가위바위보를 했다가 져서 못 가게 됐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씨는 체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학교 측에 전화를 했지만, 아이들이 몰리는 경우 모두 수용할 순 없다는 답변만을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올해부터 자유학기제가 전면 시행됐지만 이를 진행하는 학교 현장에서는 실질적 진로탐색이 불가능하다는 볼멘소리가 이어진다. 예견된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과정이 없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교사들은 특히 주대상인 중1의 경우 체험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자유학기제가 너무 이른 나이의 아이들에게 갑자기 적용됐다는 설명이다. 서울의 A중학교 교사는 “자신의 삶과 접속이 안 된 상태에서 학생들은 체험 등의 결과로 무엇이든 내보여야 한다”며 “벌써부터 진로 결정에 대한 부담을 표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교육부에서는 효율성을 위해 소규모로 팀을 꾸려 체험처를 찾아가라고 하지만, 인력 자체가 부족한 학교에서는 이 또한 난감한 일이다. 대전의 B중학교 교사는 “1학년이 150명 있는데 학생 희망을 수용해 가급적 5명 정도로 맞추려면 30개 팀이 된다”면서 “1학년 담임교사 5명이 30개를 다 커버할 수도 없고 해당 인원을 갈수록 늘려가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체험을 계획하고 진두지휘하는 진로전담교사는 체험처 섭외에 진이 빠진다. 교육부가 진로체험처 매칭사이트 ‘꿈길’ 등을 운영하며 체험기관을 안내하고 있지만, 학생들이 실제 참여를 희망하는 곳은 매우 제한적이다. 미처 체험처를 섭외하지 못한 일부 교사들은 1학기 말까지 ‘꿈길’ 사이트를 통해 입력해야 하는 2학기 체험계획을 허위로 작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육부는 체험처 부족 문제는 웬만큼 해소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는 체험처 확충보다 교육의 질 개선에 더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렵사리 체험기관을 방문해도 개요 정도를 듣고 ‘견학’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학생들을 위해 몰입도를 높여 교육을 실시할 전담 부서나 인력, 공간이 미비하다. 당국이나 지자체의 체험기관에 대한 지원은 비교적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곳을 선별해 달아주는 ‘인증 마크’가 전부다. 서울의 C중학교 진로담당교사는 “교육, 상담, 체험의 삼박자가 어우러져 아이들이 스스로 개척하는 틀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현실은 이 같은 중심축들이 유기적 연계는커녕 제 역할도 못 하고 있다”며 씁쓸해했다. 송병국 순천향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교수는 “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인프라를 준비하지 않고 확산시킨 제도가 문제”라며 “내가 있는 일터에 청소년들이 온다면 내 일에 대해 설명하고 일터의 의미를 전해줄 수 있는 사회적·문화적 바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
섣부른 ‘자유학기제’… 중학생 진로탐색 한계
입력 2016-09-25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