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때부터 십자가의 도를 훼손하려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유대교인입니다. 그들은 십자가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했고, 2000년 동안 자신들이 지켜왔던 율법과 전통을 지키라고 요구했습니다. 몇몇 어리석은 신자들은 그 말에 현혹됐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현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본문을 기록했습니다. 그 후 다시 2000년이 지났습니다. 오늘 우리 기독교도 유대교처럼 나름의 전통과 율법을 세웠습니다. 유대교인들처럼 우리도 십자가 외의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정치제도와 형식 등에 십자가의 도는 점점 함몰돼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 7:22)
사람들은 ‘주의 이름으로’라는 깃발 아래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교회 안에서 당파싸움을 할 때도 자신의 명분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님의 이름을 이용합니다. 어떤 분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주님의 가르침이야말로 모두가 인정하는 훌륭한 가르침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가르침대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주여 우리가 주의 말씀대로 산다고 했지만 그렇게 살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라며 주일마다 기도합니다. 그 기도가 그저 입에 발린 말이나 형식적 기도가 아니라면 우리는 정말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했음을 진심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정말 좋은 가르침인데 그렇게 살 힘과 의지가 우리에게 부족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느 날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율법을 지켜라.” 부자 청년은 “내가 다 지켰습니다. 무엇이 부족합니까”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이 율법의 본질인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음을 꿰뚫어 보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기독교의 본질인 십자가의 도를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요. 교회에서 이런저런 직분을 가지고 충성한다고, 헌신한다고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자랑하거나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무릎 꿇어 말했습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바울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히 그 어떤 것으로 어깨를 펴고 얼굴을 들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여잡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부여잡지 않으면 그 어떤 사람도 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복음의 진수인 십자가의 도리를 부여잡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바쳐 순교하면서도 이 진리만큼은 사수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진수이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많은 학식이 있고 자랑할 것도 많았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도만을 부여잡았습니다. 한국교회가 십자가의 도를 다시 회복하기를 소망합니다.
배경락 목사 (서울 서북교회)
◇약력=△총신대·총신대 신대원 졸업 △저서 '곧게 난 길은 하나도 없더라'(지혜의샘)
[오늘의 설교] 복음의 진수 십자가의 도
입력 2016-09-21 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