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세 老화백 “개인전 준비에 설레고 떨렸다”

입력 2016-09-21 17:41 수정 2016-09-21 21:32
95세의 현역으로 개인전을 여는 백영수 화백이 서울 종로구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부인 김명애씨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트사이드갤러리 제공
최근에 작업한 ‘말’, 1984년작 ‘가족’, 1997년작 ‘새와 모자(母子)’(위 작품부터). 아트사이드갤러리 제공
김환기(1913∼1974) 이중섭(1916∼1956) 장욱진(1917∼1990) 유영국(1916∼2002) 등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화가들이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된 이들과 함께 ‘신사실파’ 동인으로 활동한 백영수(95) 화백은 유일한 생존 작가다. ‘새로운 사실을 표방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1947년에 창립된 신사실파는 국내 최초로 추상회화를 추구한 작가 그룹이었다.

이중섭의 절친한 친구이자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전설’로 불리는 백 화백은 경기도 의정부 작업실에서 여전히 붓질을 하는 영원한 현역이다. 그가 23일부터 10월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한 편의 동화 같은 이미지의 대표작 ‘모자상’을 비롯해 ‘여백, 창’ 시리즈, 올해 작업한 드로잉과 콜라주 등 40여점을 선보인다. 드로잉과 콜라주는 처음 공개된다.

전시를 앞두고 20일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간담회를 가진 그는 “오랜만에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기쁘고 설렌 나머지 손과 마음이 떨렸다”고 소회를 밝혔다. 워낙 고령이어서 대작은 하기 어렵지만 소품과 드로잉은 혼자 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그는 “우리 부인(김명애씨·68) 참 예쁘죠? 항상 옆에서 도와줘서 지금까지 작업할 수 있었다”며 부부애를 과시했다.

두 살 때 일본으로 건너간 백 화백은 오사카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뒤 44년 귀국해 미술교사와 대학교수로 활동했다. 77년부터 33년간 프랑스 파리에 체류하며 100여 차례의 전시를 통해 유럽에 한국미술을 알리는 데 힘썼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모자상’ 등 정감 어린 소재와 부드러운 색채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개척했다는 평가다.

그는 얼마 전 발간한 회상록 ‘성냥갑 속의 메시지’를 소개하며 옛 동료작가들에 얽힌 애틋한 사연들을 들려줬다. “1953년 3월 국립박물관에서 ‘신사실파’ 전람회가 열렸는데 이중섭은 소 그림 대신 굴뚝 그림을 내놓았어요. ‘왜 이걸 냈나?’하고 물었더니 ‘굴뚝이 어때서’라고 대꾸했어요. 이중섭은 독창적인 기질이 다분했지요.”

전시회 중에 작가들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장욱진 그림은 땅도 그렇고 소도 그렇고 왜 온통 빨갛게 그렸느냐, 사상적으로 이상하다는 지적을 받은거죠. 유영국의 산 그림은 가운데 선을 중심으로 아래는 푸른색, 위에는 붉은색이었는데 붉은색은 빨갱이를 의미하는 것 아니냐며 트집을 잡기도 했고요.”

신사실파 활동은 서울 신세계백화점 화랑에서 4회째 전시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김환기의 프랑스 파리행이 급진전되면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고 한다. 백 화백은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맞아 “동료들에게 신세를 지면서 막걸리라도 한 잔 사고 싶어했지만 돈이 없어 미안해하며 밤새 울먹이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추억했다.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