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섬들을 두고 있는 충남 보령은 서해안 제1의 관광지로 손꼽힌다. 원산도, 삽시도, 효자도, 고대도 등 섬 70여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보령 앞바다를 장식하며 ‘섬들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그 가운데 서해안 낙조를 벗 삼아 아름다운 풍경을 뽐내고 있는 ‘신비의 보물섬’ 외연도(外煙島)를 찾았다.
충남 서해에서 가장 먼 바다에 위치한 외연도는 신비한 자태를 자랑한다. 새하얀 해무(海霧)가 섬을 감쌀 때가 많아 ‘연기에 가린 듯하다’는 뜻을 지녔다. ‘서해의 고도’라는 별칭답게 바람이 잔잔한 새벽엔 중국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배를 타고 꼬박 2시간을 나서야 만날 수 있는, 아득한 바다에 오롯이 떠 있다는 섬이다.
항구를 벗어난 배는 짙푸른 바다를 향해 미끄러진다. 바다에 떠 있는 원산도와 삽시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가까워졌다가 멀어진다. 외연도로 가는 뱃길은 멀고도 멀다. 하지만 해무가 빚어내는 신비한 바다풍경을 벗 삼아 가노라면 어느새 눈앞에 다가온다. 바다안개에 어렴풋이 보이는 섬에 도착하니 갈매기 떼의 환영이 극성스럽다. 외연도에는 주산인 당산과 봉화산, 천연기념물 제136호로 지정된 상록수림, 몽돌해수욕장과 기암괴석 등이 있다.
항구에 내리면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서면 어린 날 뛰어놀던 추억의 마을길 같은 골목이 반긴다. 골목 담장마다 꽃과 바다풍경을 소재로 한 벽화들이 눈길을 잡는다. 그림속 물고기·꽃·나무 등이 산에서 또는 바다에서 금방 가져다 놓은 듯 생생하다.
골목 끝은 당산으로 이어져 있다. 천연기념물인 상록수림으로 향하는 언덕길 주변에는 빽빽이 들어선 다양한 수목이 산 전체를 지붕처럼 덮어 하늘을 가린다. 수백년 된 후박나무, 동백나무, 팽나무, 고로쇠나무 등이 우람하다. 이곳엔 연리지인 사랑나무가 있었다. 뿌리가 다른 두 개 나무에서 뻗어 나온 줄기가 한 몸처럼 서로 붙어 있던 명물이었다. 아쉽게도 2010년 태풍 곤파스에 쓰러져 이제는 추억의 팻말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숲 속에 설치된 나무데크를 따라가다 보면 사당이 있다. 중국 제나라 왕의 아우로 한나라에 대항하다 패해 외연도로 피신한 뒤 이 마을의 수호신이 된 전횡장군을 기리는 곳이다. 사당을 지나 좀 더 올라가니 갑자기 서해 풍경이 쫙 펼쳐진다.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다.
마을로 내려와 섬의 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향하면 공원을 지나 발전소에서 고개를 넘으면 고라금에 닿는다. 길 옆으로 늘어선 대나무들이 서걱서걱 노래를 풀어놓는다. 그 숲 사이로 바다가 활짝 펼쳐진다. 해변에는 크고 작은 몽돌들이 파도가 남겨놓은 시간의 소리를 들려준다.
고라금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이 섬의 두 번째 산인 망재산이다. 왼쪽 오솔길을 택하면 누적금으로 이어진다. 해변에 우뚝 서 있는 바위가 마치 볏단을 쌓아 놓은 노적가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도 몽돌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이곳에서 조금 나와 왼쪽 언덕 하나를 넘으면 다시 바다가 다가온다. 돌삭금이다. 여기에는 몽돌도 있지만 거의 집채만한 거대한 바위들도 있다. 변성암, 화강암, 퇴적암 등 생성과정에 따라 색깔도 모양도 다르지만 파도에 씻기고 씻겨 모나지 않고 유순하다.
이어 작은명금·큰명금으로 향한다. 몽돌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처럼 보여서 얻은 이름이 명금이다. 수많은 금덩어리가 바닷가에 모여 있는 느낌이다. 이 길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언덕에 양탄자처럼 펼쳐진 초지와 시원한 바다, 그리고 멀리 노랑배와 구름을 두른 봉화산이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내고 있다.
큰명금을 벗어나 언덕길을 조금 오르면 약수터가 나온다. 이어 노랑배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해안절벽에 돌출된 바위가 노란 뱃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봉화산 허리를 따라 가는 길에 들어서면 지나온 돌삭금, 작은명금, 큰명금이 발아래로 보인다. 상투를 튼 머리 모양의 상투바위와 한 쌍의 매가 날개를 웅크리고 마주앉은 듯한 매바위가 운치를 더하고 그 너머로는 파란 바위들로 이루어진 대청도와 중청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눈을 왼쪽으로 돌리면 당산 뒤쪽으로 팔색조가 산다는 횡견도가 희미하게 누워 있다. 길은 얇은 판석으로 덮여 있어 편안히 걸을 수 있다. 길 옆에 해막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당제를 지내는 동안 ‘피 부정’을 막기 위해 출산이 예상되는 여성을 마을 밖으로 피신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오두막이다. 노랑배 전망대에 서면 정면으로는 고래를 닮아 고래바위라고도 불리는 관장도가 떠있고 오른쪽으로는 노란 뱃머리를 연상시키는 해안절벽인 노랑배가 들어온다.
되돌아나와 봉화산(273m)으로 올라서면 산 중턱에 전망대가 나온다. 이 곳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바다는 하늘을 그대로 담았다. 정상의 봉수대는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가장 육지와 멀리 떨어진 봉수대다. 조선전기 왜적을 감시하고 바다 건너 중국을 경계하는 역할과 조선후기 자주 출몰했던 이양선에 대응하기 위한 봉수대다. 새벽녘 자욱한 해무에 가려 신비스럽게 솟아 있는 봉화산과 바다에서 불현듯 떠 오른 듯한 망재산은 한 편의 서시처럼 장엄하다. 외연도는 이제 추억과 그리움으로 남는다.
여행메모
충남서 가장 서쪽 위치한 섬… 대천터미널서 배로 2시간
외연도는 충남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섬이다. 면적은 1.53㎢이고 해안선 길이는 8.7㎞로 크지 않은 섬이다. 대천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53㎞ 떨어져 있으며 여객선을 타고 호도·녹도를 거쳐 2시간 남짓 걸린다. 주변의 횡견도·대청도·오도·수도·황도 등과 함께 외연열도(外煙列島)를 구성한다. 섬의 남쪽 선착장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돼 있다.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청산도·매물도와 함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했고, CNN이 ‘대한민국 가장 아름다운 섬 33선’으로 뽑았다. 안개, 일출·일몰의 두 얼굴의 태양, 몽돌, 수만 년 바다의 시간을 말해 주는 바위 등 10가지 보물을 가진 섬으로 불린다.
외연도에 가려면 먼저 대천연안여객선터미널로 가야 한다. 서해안고속도로 대천나들목에서 빠져 36번 국도를 타고 대천해수욕장·대천항 쪽으로 3.53㎞ 달리다 대천항·대천해수욕장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이어 대천항로를 따라가다 남곡동·보령 방향으로 우회전한 뒤 연달아 두 번 좌회전하면 도착한다. 터미널에는 무료주차장이 있다.
대중교통으로는 대천역이나 보령종합터미널에서 대천항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수시로 운행된다. 대천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외연도로 가는 쾌속선은 하루 2회 운항한다. 배 시간은 계절별로 변동되기 때문에 미리 문의하는 게 좋다(041-934-8772). 요금은 갈 때 1만6500원, 올 때 1만5000원.
외연도에는 특별한 맛집이 없다. 대신 민박집이나 어촌계여관 등에 딸린 식당에서 내주는 해산물 위주의 상차림이 깔끔하다. 싱싱한 자연산 생선회와 붕장어 요리 등도 맛볼 수 있다. 외연도펜션은 시설이 깔끔하다.
외연도(보령)=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