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올 것이 왔다”… 심각한 경영권 공백 우려

입력 2016-09-21 00:01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일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가운데 서울 중구 롯데그룹 본사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뉴시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에 대한 검찰의 사전구속영장 청구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룹 내 2인자로 불렸던 이인원 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다른 주요 임원들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터라 신 회장이 구속될 경우 롯데그룹은 심각한 경영권 공백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롯데는 신 회장이 검찰에 소환된 20일 공식 입장자료를 통해 “최근 일련의 일들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어 “우선 고객 여러분과 협력사 피해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국내외 18만명이 종사하는 롯데의 미래 역량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임직원들이 힘을 모으겠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사태를 통해 더욱 큰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 공헌에 앞장서고 국가경제에 기여하겠다”며 “신뢰받는 투명한 롯데가 될 수 있도록 뼈를 깎는 심정으로 변화하겠다”고 덧붙였다.

롯데가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신 회장이 재판을 받기도 전에 구속되는 경우다. 롯데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경제사범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 향후 재판에서도 실형이 나올 확률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일본 언론들은 이를 아예 ‘체포’라고 표현하는데, 책임자들은 즉각 사퇴하는 게 일본의 관행”이라고 말했다. ‘구속=유죄’로 보는 일본 경영계 분위기를 감안하면 신 회장 구속 시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진이 신 회장을 대표직에서 물러나도록 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현재 신 회장에게 우호적인 종업원지주회(27.8%), 관계사(20.1%), 임원지주회(6%) 등 롯데홀딩스 내 주요 주주들의 지지도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롯데로서는 가정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이런 가정이 현실화되면 롯데는 신 회장과 롯데홀딩스 공동대표직을 맡고 있는 스쿠다 다카유키 대표가 경영권을 잡게 될 공산이 크다. 우선 신 회장을 대신해 총수 일가 중 경영을 맡을 인물이 없다. 지난달 31일 법원에서 후견인(법정대리인)이 필요하다는 결정까지 받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경영에 복귀하기도 어렵고, 형인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대표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 대표가 다시 경영권 확보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있지만 이미 지난 주총 결과를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이른바 가신(家臣)그룹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룹의 살림 전반을 책임졌던 이인원 부회장은 검찰 소환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소진세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과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 등 주요 임원들은 모두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한·일 롯데그룹 전체가 일본인이 경영하는 그룹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신 회장은 이를 감안해 한국 롯데의 지주사격인 호텔롯데를 상장함으로써 일본 롯데와의 연결고리를 점차 줄여나가려 했으나 검찰 수사로 이마저 쉽지 않게 됐다.

롯데는 경영 공백으로 인한 사업 차질도 우려하고 있다. 롯데의 한 임원은 “유통이나 화학사업 부분은 매순간 최고결정권자의 판단이 중요한데 주요 임원들의 신분이 모두 ‘피의자’로 전환된 상황에서 신 회장마저 구속되면 이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미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호텔롯데 상장과 롯데케미칼의 미국 액시올사 인수, 제2롯데월드타워 개장 등 굵직한 현안들은 연기되거나 무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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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