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싸움, 진화해야 산다… 주춤하는 기성용 어디로

입력 2016-09-20 18:30
프란체스코 귀돌린 감독
한국 축구 대표팀의 중원 사령관 기성용(27·스완지시티·사진)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선수다. 186㎝, 75㎏이라는 탁월한 신체조건을 가진 평범한 미드필더에서 패스를 잘하는 미드필더로, 공격력까지 장착한 미드필더로 꾸준히 성장해 왔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순항하던 그는 이번 시즌 주춤하는 모양새다. 무엇이 문제일까.

기성용은 2006년 1월 FC 서울에 입단해 2년 만에 K리그 주전 자리를 꿰찼다. 2010년 1월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셀틱으로 이적하며 유럽으로 진출했다. 2012-2013 시즌을 앞두고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에 둥지를 틀었다. 그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팀으로 이적하며 자신의 기량을 발전시켜 왔다.

2014-2015 시즌은 기성용에게 중요한 시기였다. 생존을 위해 한 단계 성장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땅한 스트라이커가 없던 스완지시티에서 공격 임무를 받아 팀 내 최다 골(34경기 8골)을 기록했다. 주전 경쟁과 공격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다. 볼 키핑과 패싱력도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은 그는 팀의 에이스로 떠올랐다.

지난 시즌 기성용은 ‘미들라이커(미드필더+스트라이커)’ 역할을 내려놓고 자신의 전공인 수비형 미드필더 업무에 충실했다. 그러나 존조 셀비, 레온 브리턴, 잭 코크 등과 번갈에 호흡을 맞춘 탓에 자기 기량을 맘껏 펼쳐 보이지 못했다. 공격과 수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그는 30경기 출장에 2골 1도움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지난 시즌을 마쳤다.

기성용은 이번 시즌에도 고전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프란체스코 귀돌린 감독과 ‘케미’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기성용은 지난 시즌 초반 개리 몽크 감독 체제에서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앨런 커티스 감독대행 시절엔 16라운드부터 22라운드까지 7경기 모두 출장했다. 경기당 출전 시간은 81.6분이었다.

하지만 지난 1월 귀돌린 감독이 ‘구원투수’로 부임한 이후 기성용은 충분한 출전 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다. 지난 시즌 후반 16경기에서 8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풀타임을 소화한 경기는 2경기밖에 되지 않는다. ‘빗장수비’로 유명한 이탈리아 출신인 귀돌린 감독은 수비 축구를 지향한다. 이 때문에 르로이 페르, 코크, 브리턴 등 수비에 뛰어난 선수를 선호한다. 기성용은 경기 조율과 전진 패스에 능하지만 수비가 약하고 활동량이 떨어지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귀돌린 감독으로서는 성에 차지 않는 미드필더인 셈이다. 기성용은 이번 시즌 총 6경기에 나서 평균 63.2분을 뛰었으며, 공격 포인트는 없다.

기성용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영국 사우샘프턴의 세인트 매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샘프턴과의 프리미어리그 5라운드에 선발 출전했다가 후반 21분 교체됐다. 마음이 상한 기성용은 귀돌린 감독과 악수를 하지도 않고 곧장 벤치로 향했다. 귀돌린 감독은 경기 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선수들과의 관계가 가장 소중하다고 믿고 있다”며 “기성용의 실망감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결코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이날 스완지시티는 0대 1로 패해 최근 4경기 연속 무승(1무3패)의 수렁에 빠졌다. 1승1무3패(승점 4)를 기록 중인 스완지시티는 15위에 머물러 있다.

영국 언론들은 귀돌린 감독의 선수단 장악력과 리더십에 의문을 품고 있다. ‘데일리메일’은 19일 “귀돌린 감독이 기성용 등 일부 선수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며 “선수들은 그의 훈련 방식과 선수를 다루는 기술에 대해 회의감을 갖고 있다. 팀의 성적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경영진은 행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5월 스완지시티와 2년 재계약을 한 귀돌린 감독이 경질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령탑의 교체 여부를 떠나 기성용이 팀 내에서 입지를 다지려면 다시 한 단계 진화해야 한다. 패스와 공격력에 수비력까지 장착해야 한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지네딘 지단이나 사비 에르난데스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경기를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기성용은 진정한 중원의 ‘마에스트로’가 될 때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글=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일러스트=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