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분노로 가득하고, 분노조절이 안 된다고들 한다. 그런데 충동적 폭력이나 살해까지 초래하기도 하는 일시적인 분노 감정이 아니라 안정적이고 장기적 성격의 일부인 증오 정서를 만들어 가고 있다.
‘맘충이’(엄마와 벌레 ‘충’의 결합어) ‘개저씨’(개와 아저씨 합성어) 같은 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내 아이만 소중하기에 공공장소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무관심한 사람들에 대한 증오이다. 막무가내식 행동을 일삼는 중년 남성들, 가부장적인 생각을 가지고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는 이들에 대한 집단 증오의 표출이다.
그런가 하면 이별 범죄로 대표되는 개인적 증오도 넘쳐난다. 이별을 통보받고 여자 친구에게 빙초산을 뿌린 사건뿐 아니라 지난달에는 재결합을 거부한 여성이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지난해 여자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뒤 시멘트까지 부었던 남자는 징역 18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여자 친구의 이별 통보에 여자 친구가 만나는 남자를 찾아가 야구방망이로 수차례 때린 사건도 얼마 전 있었다. 최근 10년간 발생한 이별살인 피해자만 10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런 범죄는 헤어진 연인에 대한 보복으로 사생활이나 특정 신체부위가 담긴 영상이나 사진을 유포하는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로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증오는 개인적일 수도 있고, 집단적일 수도 있는 감정이다. 증오는 공격성의 주 정서이고, 분노에서 파생된 복잡하고 체계적인 정서로서 여러 갈망을 포함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나쁜 대상에게 고통을 주고 지배하고 해를 가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극심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증오의 대상을 향해 복수하고자 하는 열망을 동반하며, 그런 열망을 실행에 옮기는 것까지 이어질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복수 행위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사고로 인해 죄책감도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제시한 심리학자 스턴버그 교수는 최근에 사랑의 세 가지 축인 친밀, 열정, 헌신으로 구성된 증오의 삼각형 이론을 발표하였다.
완벽한 사랑을 위해서는 상대와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지지해주는 따뜻한 감정에 해당하는 친밀감, 같이 관계하고 싶어 하는 본능과 같은 뜨거운 열정, 그리고 그 어떤 방해가 있다 하더라도 이 사랑을 지켜가고자 하는 냉정한 사고로 인한 헌신의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세 가지 축이 증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친밀함에서 멀어지는 정서의 거리감, 분노나 두려움과 같은 강한 열정적인 욕구, 그리고 상대나 상대 집단에 대해 평가절하하는 냉정한 사고다. 이 세 가지 축들로 여러 가지 증오 유형이 만들어진다. 그저 그 상대나 집단과의 친밀한 거리를 멀리하려는 증오에서부터 참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해를 가하는 증오, 상대나 상대 집단에 대해 분석하고 평가절하하고 비판하는 증오가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축을 다 가진 증오는 상대를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감정이 전혀 없고, 상대의 잘못에 대한 집착적인 사고와 판단으로 인해 상대를 망가뜨리고자 하는 복수의 열정으로 결국 상대를 파멸시키게 하는 행동까지 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분노를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는 형국이다. 이런 증오는 상대뿐 아니라 자신 역시 파멸로 이르게 한다. 분노가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고 증오가 공고화되는 사회가 우려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혼자만의 괜한 우려라면 좋겠다.
곽금주 심리학과 서울대 교수
[청사초롱-곽금주] 증오사회를 우려한다
입력 2016-09-20 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