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국 110명 아이들… 꿈은 믿으면 이뤄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입력 2016-09-20 21:10
2016 기아대책 희망월드컵에 참가한 선수들과 기아대책 간사 일동이 8일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대회 폐막식 직후 다함께 'HOPE(희망)'이라는 영어 글자를 만든 모습.
말라위 릴롱궤 국제공항에 지난 14일 도착한 말라위 축구선수단이 마중 나온 가족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말라위는 2016 기아대책 희망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10일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창경궁 나들이에 나선 페루와 필리핀 선수들의 모습.
지난 6일 희망월드컵 개막일에 올스타 경기를 마친 필리핀의 켄 아야만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아버지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위) 지난 6일 희망월드컵 개막식 행사 직전 열린 후원자와의 만남 시간. 케냐 선수와 한국인 후원자가 함께 활짝 웃고 있다.(아래)
지난 4일 제주도 협재해수욕장을 찾은 우간다 대표단 선수들이 즐거워하는 모습.
‘2016 기아대책 희망월드컵’에 참가하면서 “꼭 우승해 말라위에 새로운 역사를 남기고 싶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던 아프리카 최빈국 말라위의 축구선수 펨페로 마체소(14). 비닐로 만든 공 ‘지꾸룽가’로 연습해왔던 그는 한국에 와서 만져본 진짜 축구공의 촉감이 너무 부드럽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펨페로는 이번 대회 5번의 경기에서 단 한 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의 철벽수비에 힘입어 말라위는 결승전에서 케냐를 3대 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펨페로는 “꿈은 믿으면 이뤄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기뻐했다.

지난 14일 말라위 릴롱궤 공항은 기아대책 축구단을 맞으러 나온 가족과 친지, 지역 관계자들로 떠들썩했다. 국영방송과 현지 신문에서도 앵커와 기자가 직접 현장에 나와 이들을 취재하며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기아대책이 축구로 빈곤국 아이들의 잠재력을 키워주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희망월드컵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말라위 케냐 페루 필리핀 등 10개국 110명의 아이들은 귀국해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한국에서 2주 정도 머물며 축구를 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동안 아이들의 가슴에는 남다른 희망과 꿈이 싹트기 시작했다.

페루 선수 리차드 잉나시오(15)는 수도 리마 외곽의 빈민촌 아마우따에 살면서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왔다. 두 형이 술과 마약에 손을 대고 폭력을 휘두르는 등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에 어려서부터 반항적인 기질이 컸다. 형들의 폭력을 피해 집 밖에서 공을 차기 시작하면서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왔다. 그는 “이번 경기를 통해 내 축구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꼭 확인해보고 싶다”고 했다. 리차드는 개막일에 열린 올스타전에서 연거푸 골을 넣는 등 인상적인 경기를 선보였다. 축구 관계자들로부터 “참가 선수 중 가장 눈에 띄는 경기력을 보여줬다”는 평을 들었다. 리차드는 경기장 밖에서도 어린 선수들을 돌보며 맏형 노릇을 톡톡히 했다. 페루 대표단은 이번 대회에서 정정당당한 경기를 펼쳐 ‘페어플레이’ 상을 받았다. 리차드의 부모와 누나는 18일 이들을 인솔했던 김중원 기대봉사단을 찾아와 “리차드가 의젓해지고 완전히 달라졌다”며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아동들은 축구장 밖에서도 다양한 꿈을 이뤘다. 필리핀 선수 켄 아야만(13)은 아빠를 만나겠다는 꿈을 안고 참가했다. 아버지 알란 아야만(42)씨는 8년 전 한국에 건너와 광주의 한 전자제품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어쩌다 한 번 필리핀을 찾다보니 켄은 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지난 5일 첫 경기가 열리던 날, 아버지는 아들이 경기하다 발목 부상으로 나오자 다친 발을 주무르며 위로했다. 아야만씨는 “이틀이었지만 아들을 한국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며 “아들이 건강하게 커서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켄 역시 “필리핀에 돌아가서 아빠를 생각하며 더욱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했다. 역시 필리핀 선수인 커트 켄나이 산티아고(13)도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아빠 알리 켄나이 산티아고(33)씨와 상봉의 시간을 가졌다.

이 밖에 오랫동안 도와준 한국인 후원자를 만나 저마다 기량을 선보이는 기회를 가진 아동들도 있었다. 어렵게 한국 나들이를 온 이들은 다양한 한국문화 체험 시간도 가졌다. 한복을 입고 고궁 나들이를 하고 한강에서 유람선을 타며 서울 시내를 구경했다. 롯데월드, 에버랜드 등 놀이공원을 방문해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쌓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기아대책 유원식 회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키워 지역사회 리더로 성장하길 소망한다”며 “후원자들의 작은 나눔이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가 널리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사진=기아대책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