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한 피난민으로 누구보다도 전쟁과 분단, 통일 문제에 대해 글을 써왔지요. 주인이면서 또한 손님 같은 국외자의 시선으로 쓴 글들은 앞으로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소중한 문학이지요.”(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분단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이호철 선생의 영결식이 20일 오후 7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대한민국문학인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식은 대한민국예술원, 한국문인협회, 한국작가회의, 국제펜한국본부, 한국소설가협회 등 좌우를 망라한 5개 단체가 공동으로 주관한다. 고인은 두 달 전 뇌종양 판정을 받고 서울 은평구 한 병원에서 투병하다 18일 오후 85세로 운명을 달리했다.
19일 빈소가 마련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동료·후배 문인들은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동갑내기 최일남 작가는 “진보·보수 단체를 망라해 문단의 큰일을 맡아 한 중추였다. 최고의 대우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후배 문인 최성배(문인협회 이사)씨는 “예술 하는 사람은 진영 논리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늘 당부하셨다”고 전했다.
신경림 시인은 “아이처럼 천진난만했다. 그러면서 문단에서 형 노릇을 다했던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빈소에는 최원식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문효치 문인협회 이사장 등 장례위원을 비롯해 문학평론가 염무웅, 시인 김남조 유안진, 소설가 김승옥 한말숙 등 한 시대를 함께 호흡했던 원로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고인을 추억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한승헌 변호사(전 감사원장), 이재오 전 의원 등도 찾았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트위터에 “이호철 선생의 문학과 삶에는 언제나 분단과 실향의 아픔이 절절했습니다. 민주화운동과 시민운동을 할 때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늘 뿌리 잃은 삶의 쓸쓸함과 허허로움이 느껴져서, 제 아버지의 삶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고 추모 글을 올렸다.
193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4후퇴 때 혈혈단신 남하했다. 그게 가족과의 생이별이었다. 아내 조민자씨는 “늘 우리 엄마, 우리 엄마 하시면서 남북 관계가 냉각되는 걸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뇌종양 판정을 받아 입원하기 하루 전까지도 문인협회가 발간하는 ‘월간문학’에 연재하는 ‘우리 문단의 지난 60년 이야기’ 원고를 썼다. 잡지사에 넘기지 못한 13회가 유작이 됐다.
월남 이후 부두 노동자 등을 전전하며 습작하던 고인은 1955년 ‘문학예술’에 단편 ‘탈향’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61년에는 단편 ‘판문점’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이후 장편 ‘소시민’ ‘서울은 만원이다’ ‘남풍북풍’ ‘그 겨울의 긴 계곡’, 중단편 ‘퇴역 선임하사’ ‘무너지는 소리’ ‘큰 산’, 연작소설 ‘남녘사람 북녘사람’ 등을 썼다. 60여년 그가 붙들어 맨 문학의 화두는 분단의 상처였다.
고인은 민주화운동에도 투신해 고은 선생과 자유실천문인협회를 창설했다. 이른바 ‘문인 간첩단’ 사건,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 등에 연루돼 투옥되기도 했다. 냉전시대가 낳은 분단의 질곡은 문학뿐 아니라 개인사를 관통하는 시련이기도 했다. 발인은 21일 오전 5시, 장지는 국립5·18민주묘지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우리 엄마, 우리 엄마 하면서 남북관계 염려”
입력 2016-09-20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