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배우들이 ‘빛나는 조연’으로 한국 영화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600만 관객을 돌파하고 계속 흥행 중인 ‘밀정’의 쓰루미 신고(52)와 680만 관객을 불러 모은 ‘곡성’의 구니무라 준(61)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한국영화에 출연한 일본 배우는 오가디리 조(마이 웨이), 우에노 주리(뷰티 인사이드), 오스기 렌(대호), 다카기 리나(아가씨) 등이 있다. 대부분 주목받지 못한 조연 또는 단역이었으나 쓰루미와 구니무라 두 배우는 뛰어난 연기력과 강렬한 카리스마로 한국 관객들에게 인상을 남겼다.
쓰루미는 ‘밀정’에서 일본 경찰조직의 넘버 2인 총독부 경무국 부장 히가시 역을 맡아 이정출(송강호)에게 의열단의 전모를 캐도록 지시한다. 의열단 소탕에 이정출을 이용하지만 또 다른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 하시모토(엄태구)를 통해 끊임없이 그를 감시한다. 날카로운 눈빛과 예리한 통찰력, 목적을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잔인함을 지녔다.
1977년 TV드라마 ‘죽순이 무럭무럭’으로 데뷔한 쓰루미는 영화 ‘날았다 커플’ ‘사랑스런 엘리’ ‘라센’ ‘검은 천사’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다. 김지운 감독은 NHK 대하 사극을 통해 쓰루미를 발견했고, 그는 김 감독의 전작들을 여러 번 봤다. 그러다 김 감독의 출연 제의에 악랄한 일본 경찰 역할임에도 망설임 없이 응했다.
한국영화 출연은 2011년 강제규 감독의 ‘마이 웨이’에 이어 두 번째다. 쓰루미는 김지운 감독, 송강호와 함께 작업하는 것이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김 감독은 굉장히 폭넓은 연출을 하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작품에 꼭 출연하고 싶었다. 송강호, 공유 두 배우는 열정적으로 연기를 하면서 서로 배려해주는 게 인상 깊었다”고 했다.
‘곡성’에서 외지인 역할을 맡은 구니무라는 1981년 영화 ‘가키테이고쿠’로 데뷔한 후 숱한 작품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연기파 배우다. 그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지독하게 촬영하는 나홍진 감독의 작업방식에 반했다. 촬영 도중 “나 감독은 자신의 몸을 깎아가며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 그러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감독과의 격의 없는 신뢰를 바탕으로 극 중 깊은 산속에서 사람인지 괴물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무서운 외지인 캐릭터를 소화했다. 눈을 벌겋게 뜨고 고라니를 뜯어먹는 장면 등에선 소름끼칠 정도로 집중력을 보였다. 그의 연기 덕분에 영화는 흥행했고 칸 국제영화제에서 레드카펫을 밟는 영광도 안았다.
그는 최근 MBC ‘무한도전-무한상사’에 은퇴한 일본인 직원으로 출연해 신스틸러의 면모를 과시했다. 제작진이 ‘곡성’을 보러 갔다가 구니무라의 연기에 강한 인상을 받고 일본인 역할을 집어넣었다는 후문이다. 출연 분량은 짧지만 감정의 동요 없이 눈빛을 발하며 연기하는 모습은 ‘곡성’의 이미지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조연으로 빛난 日 배우들
입력 2016-09-20 18:12 수정 2016-09-20 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