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병역 문제는 모든 이들의 관심사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인척 중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라는 특수 상황에서 군 인력 운용은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다.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는 누구나 평등하게 군대에 가는 징병제를 유지해 왔다. 남경필 경기지사가 내년 대선 정국과 맞물려 제기한 모병제는 곧바로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전 대표가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을 표시했다. 남 지사와 더민주 김두관 의원,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등 각계 인사 70여명은 ‘모병제희망모임’을 출범시켰다. 그러자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모병제가 부당하다는 반론을 폈고, 이정현 대표는 예산·제도 등의 난관 때문에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원유철 의원도 북한 군대 규모를 볼 때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는 여당 내에서도 찬반이 갈리고, 여론조사마다 결과가 다를 만큼 복잡하다. 잠재적 대선주자들도 병역 제도가 갖는 감정적 휘발성 때문에 한마디씩 걸쳐야 할 상황이다. 징병제냐 모병제냐 하는 논란은 병력 규모, 예산, 남북 대치 상황, 미래군 체제, 청년일자리 등과 같은 현실적 문제는 물론이고 정의·평등·계층·빈부 및 노블레스 오블리주 논란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정치권이 계속 달구면 대선 정국의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글=김명호 수석논설위원, 삽화=이은지 기자
■ 이래서 찬성 - 박철규 모병제희망모임 사무총장
자원 입대로 전력 강화시키고 청년에게는 새 일자리 제공을
북한은 지난 9일 오전 국제사회의 계속된 경고를 무시하고 5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한이 두 차례의 미사일 발사에 이어 핵실험까지 강행한 것은 군사적으로는 비대칭 전력에 의존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북한의 비대칭 전력은 단기간 내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군 개혁의 속도와 방향이 지금과 같다면, 10∼20년 후에 우리 군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안타깝지만, 지금으로서 그 대답은 “No!”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적기라고 했다. 지금부터라도 현대전과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우리 군을 구조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현대전은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전자전과 정보전 중심의 전쟁이다. 북한의 비대칭 전력은 장성 숫자가 많다고, 병력이 많다고 막아낼 수 있는 무기들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군은 여전히 재래식 전쟁 중심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래서는 현대적 의미의 강군이라 할 수 없다. 이제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우리 군을 현대화·정예화해야 한다.
해답은 모병제에 있다. 강제로 끌려가는 군대가 아니라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군대는 더 강하게 만들고, 청년에게는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여 선택지를 넓혀주어야 한다. 빈발하는 방산비리와 병역비리, 자살 등의 사건사고, 가혹행위 같은 적폐도 해소해야 한다.
무엇보다 10년 뒤에는 지금의 병력수를 유지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군에 입대시킬 병력자원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군 입대 가능한 20세 남성인구가 현재 36만명에서 2025년에는 22만명 정도로 급감하는 상황에서 적정 전투력을 유지한 채 50만명이 넘는 병력을 보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굳이 방법을 찾는다면 복무기간 연장밖에 없다. 모병제는 안보다. 전투력은 머릿수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원이 줄어든 대신 현대전에 맞는 첨단무기 체제가 갖춰지며, 병사 개개인의 전문성은 크게 향상되어 정예화된다. 기존에 10∼20명이 하던 수색임무를 앞으론 드론을 조종하는 한 명의 전문요원이 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전쟁 승패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군의 사기 또한 강제로 끌려가는 징병제와는 비교할 수 없게 된다. 모병제에서는 자원입대한 군인에게 걸맞은 좋은 대우와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기와 전투의지는 저절로 높아지게 마련이다.
모병제는 일자리다. 모병제는 국가경제에도 매우 유익하다. 한 달에 200만원이 넘는 급여와 연금·취업 혜택 등 제대 후에 주어질 각종 인센티브를 감안하면 모병제 군대는 청년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일자리가 될 것이다. 모병제 병력을 30만명으로 잡으면 20만개 내외의 청년일자리가 생긴다. 군에 가지 않는 청년자원은 바로 사회로 진출하게 되어 저출산 시대에 가뜩이나 부족해지는 경제활동인구를 제공하게 된다.
모병제는 병영문화 개선을 통한 인권의식 제고의 첫걸음이다. 징병제에서 사회정의와 국민통합을 해치는 대표적 불공정 사례인 병역비리도 사라질 것이다. 이렇듯 군을 바라보는 국민적 시각이 긍정적으로 바뀌면 사회지도층은 오히려 모병제 군대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장(場)으로 삼게 될 것이다. 이 모두가 모병제가 개인 의사에 따라 입대 여부를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북한의 도발은 날로 빈번하고 과감해지고 있다. 우리 군도 더 이상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과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결단력 있고 빠른 구조혁신, 즉 모병제 도입만이 우리 군을 ‘세계 속의 강군’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 것이다.
■ 이래서 반대 -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국방전략연구실장
‘우리 안보 우리가 책임’ 자세 당연… 美와 적정 수준 병력 암묵적 합의
모병제와 징병제를 선택하는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부담 가능하다고 선택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한반도와 같이 안보위협이 첨예한 곳에서 모병제 도입으로 인해 안보·군사 문제 이외의 영역에서 나타날 수 있는 정책적 효과는 오히려 부차적인 고려 사항이 되어야 한다. 모병제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의 눈에 그것이 아무리 소망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필자는 안보 및 군사 정책적 요인을 고려할 때 현 시점에서 모병제는 채택할 수 없는 대안이라고 본다. 한반도 안보를 위한 한·미 간 역할분담구조는 암묵적으로 한국군이 적정 수준의 병력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모병제를 선택하고 그것이 한국군의 대대적인 병력 감축으로 이어진다면 누구보다 미국이 당황해할 것이다. 미국이 당황해하는 것쯤 개의치 않는다 할지라도 엄혹한 한반도 안보상황을 고려한다면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우리의 안보는 우리가 책임지겠다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많은 일들 중 최소한의 것이다.
최근 드러나는 미국의 전략을 보면 모병제는 더욱 선택할 수 없는 대안이 된다. 미국은 동맹국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이른바 뒤에서 리드하는(leading from behind) 전략이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한국군의 규모가 유지되도록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과 협력하여 한반도를 방어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다.
최근 미군의 전략문서에서 엿볼 수 있는 그들의 군사정책은 가급적 ‘가벼운 발자국(leaving light foot-print)을 남기는 것’이다. 미군이 선호하는 분쟁개입 방식은 초기에는 특수작전부대를 투입해서 해결하고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해·공군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다. 해·공군이 개입하는 경우에도 미군은 드론 등 무인체계를 활용하거나 혁신적 기술을 적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지상전에서 한국군의 역할 증대가 불가피함을 예견할 수 있는 부분이다.
대규모 병력을 보유한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군사작전 차원에서도 모병제를 채택할 수 없는 대안으로 만든다. 모병제로 인해 병력이 감축되고 그것이 전장밀도(battlefield density)를 낮추는 결과로 이어지면 안보에 매우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전장밀도의 감소는 방어자의 이점을 급격히 감소시키는 조치이다. 즉 다른 조건이 동등하다면 방어자는 공격자보다 상당한 이점을 지니지만 저밀도 전장에서는 이러한 방어자의 이점은 사라지고, 공격자는 기습과 공격력 집중을 통해 방어자를 유린할 것이다. 이 때문에 고강도 병력 감축은 군사적 안정성 유지에 치명적인 효과를 초래한다.
시야를 멀리 봐서 통일을 생각하면 모병제 도입은 더욱 난망한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통일 이후에도 적정기간 동안 징병제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뜬금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통일 이후에 징병제를 유지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통합 차원의 고려에서다. 병역의무 이행을 통해 과거 북한 지역에서 태어난 청년들의 재사회화를 도모할 수 있고, 통일한국민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 후 독일이 20년 넘게 징병제를 유지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물론 병역자원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복무 기간 단축은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할 때 한국군은 모병제로의 전환은커녕 병력 감축을 최대한 자제하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적정 규모의 지상전력과 첨단 해·공군 전력이 미군의 해·공군 전력과 상호운용성을 유지하면서 힘의 투사능력을 과시하여 한반도의 안정을 담보해야 한다. 군사력의 질을 얘기하지만 군사력의 총량도 여전히 중요하다. 군사적 측면에서 양과 질은 상호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슈 논쟁] 모병제 찬반 논란
입력 2016-09-20 19:10 수정 2016-09-20 2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