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제난·우울감에… 여성·노인, 사행산업에 빠진다

입력 2016-09-20 04:02 수정 2016-09-20 10:22



40대 주부 이경선(가명)씨는 2년 전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업 실패로 가세가 크게 기울자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처음 경마장을 찾았다. 주식 투자를 비롯해 다양한 방법으로 빚을 갚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씨는 지난해 도박중독 상담을 받기 전까지 1년 가까이 경마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상담사에게 “마권을 사고, 달리는 말을 보는 순간만큼은 답답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베팅에 소심했던 이씨는 경마로 큰돈을 잃지 않았지만 빚을 줄일 수도 없었다.

60대 은퇴자 김명준(가명)씨도 퇴직 후 경마에 빠져들었다. 평소 내성적이었던 김씨는 경제활동을 못한다는 아내의 ‘구박’을 견딜 수 없었다. 김씨가 경마장을 찾은 이유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겠다는 압박감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김씨는 퇴직 후 3년간 수천만원을 마권 구입에 쏟아부은 뒤에야 스스로 상담실을 찾았다.

경마장과 강원랜드 등 공적통제를 받는 사행사업장을 찾는 여성과 노인 이용객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화하고 있는 경제 불황과 퇴직 후 가정불화, 노년층의 문화 인프라 부족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19일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이 한국마사회로부터 제출받은 ‘경마이용자 현황 분석’에 따르면 여성 경마이용자의 비율은 2010년 10.5%에서 매년 증가해 올해 16.1%를 기록, 6년 사이 53%가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강원랜드가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에게 제출한 ‘강원랜드 이용자 현황·특성 분석’에서도 여성 입장객은 2010년 90만5888명에서 2015년 94만1821명으로 4만명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는 지난 8일까지 여성 67만여명이 입장해 올 연말 100만명 시대를 열 것으로 예상된다.

노년층의 경마장·강원랜드 이용객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0년 9.4%였던 60대 이상 경마장 이용객 비율은 올해 24.6%로 2.6배 증가했다. 60대 이상 강원랜드 입장객도 2010년 21만6450명에서 지난해 42만3061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한 도박중독 상담사는 “경마장을 찾는 여성 상당수는 우울감이나 자녀 양육 후 공허감이 이유지만 최근엔 경마장 내 다양한 시설을 구비하다 보니 애인과 함께 찾는 젊은 여성층도 늘어났다”며 “노년층은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은퇴 후 소일거리가 없어 경마장을 찾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황 의원은 “경마의 사행성에 대한 관리·감독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